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29일 삼성 LG SK 등 9개 기업집단 소속 34개 계열사의 초과 출자지분 2조9천억원 어치에 대해 의결권 제한 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해당 업체들은 초과 지분을 해결하지 않는 한 추가 투자의 길이 막혀버렸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출자총액제한제도가 새로운 전략사업을 찾아나서는 국내 기업의 발목을 잡아버린 것이다. 기업들을 '잠재적인 부당거래세력'으로 몰아붙이고 각종 규제를 가하는 정부 조치는 적정 수준을 넘었다는 지적이다. 지난 6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부당 내부거래 과징금 조치를 받은 10대 기업집단 소속 30개사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 1개사당 평균 23.6일의 조사기간 동안 20.3명의 대응 인력을 투입하느라 회사 업무에 지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을 정도다. ◆ 투자 족쇄 채운 출자총액제한 현재 자산총액 5조원이 넘는 대기업집단 소속 계열사는 다른 국내 회사의 지분에 투자할 수 있는 한도가 순자산의 25%로 제한받고 있다. 때문에 국내 기업들은 유망한 신규 사업에 타이밍을 맞춰 진출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해선 출자한도를 제한하지 않아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기업들의 출자에까지 '한도'를 정해 공정위가 개입하고 있는 데는 정부 나름의 논리적 근거도 없지 않다. 일부이긴 하지만 핵심부문이 아닌 곳에 방만한 투자를 일삼는 기업들의 행태가 비판의 도마에 올랐던게 사실이다. 국내 경제가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겪었던 데는 이런 일부 기업들의 '문어발식' 투자로 인한 자원 낭비가 적지않은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현 정부들어 사외이사제도 등 기업경영에 대한 공정 감시를 골자로 하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도입되면서 기업들의 '경영 일탈'을 사전에 예방할 장치는 충분히 갖춰졌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인렬 전경련 상무는 "지배구조 개선 등 이중삼중의 기업견제 제도를 갖춰놓고서도 획일적이고 일률적인 잣대로 모든 기업에 신규 투자의 기회를 원천 봉쇄하고 있는 출자제한제도는 시급히 재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남용되는 부당 내부거래 조사 공정위는 현장조사권 자료제출명령권 영치권 계좌추적권 등 강력한 조사권한을 통해 기업의 부당 거래를 엄격히 감시하고 있다. 그러나 조사 발동요건이 '규정 위반 혐의가 인정되거나 법 시행에 필요할 때'로 지나치게 포괄적인 탓에 행정 편의주의적인 조사가 남발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미국에서는 부당 거래조사에 착수하기 위해선 우선 연방거래위원회(FTC)의 내부 승인을 거쳐야 한다. 또 위반 혐의가 충분하고 시장질서를 교란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발동된다. ◆ 발목묶인 M&A.분사 현재 자산총액 또는 매출액 규모가 1천억원 이상인 기업은 M&A를 할 경우 공정위에 반드시 기업결합 신고를 해야 한다. 모기업이 분사 기업의 지분을 20% 이상 소유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또 M&A를 통해 1개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50%를 넘기고 2위 기업과의 점유율 격차가 25% 이상일 경우엔 독과점 심사를 받게 돼 있다. 더욱이 기존 경영권 보호를 위해 주식을 5% 이상 보유하게 되거나 1% 이상 변동이 있을 경우엔 증권시장에서 공개매수를 의무화, 사실상 적대적 M&A를 막고 있다. 반면 선진국은 대부분 명확한 규제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채 자유로운 시장경쟁이 제한받을 우려가 큰 경우에만 심사기준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정한영 기자 chy@hankyung.com [ 공동기획 : 전경련.대한상의.무역협회.기협중앙회.경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