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의 부침과 소비자 씀씀이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게 유통가의 정설이다. 주가가 오르면 씀씀이가 헤퍼지고 주가가 내리면 소비심리가 얼어붙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올해는 증시가 지지부진한데도 추석경기가 양호한 편이다. 실물경기가 꾸준히 회복되고 있는 덕분이다. 물론 유통 채널별 양극화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백화점 할인점 등은 작년 추석에 비해 예약판매량이 50%나 늘었다며 좋아하고 있는 반면 재래시장 상인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백화점·할인점=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점 지하 1층 식품매장 입구에 마련된 선물 예매코너에서 일하는 최종옥씨는 일요일인 지난 8일 화장실에 다녀오기도 어려울 만큼 바쁜 하루를 보냈다. 최씨는 "추석이 아직 2주나 남았는데 선물을 예매하려는 고객이 아침부터 계속 밀려들어 도무지 짬을 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 서울 5개 점포의 경우 지난달 30일부터 시작된 선물 예매 실적이 작년 추석에 비해 50% 정도 늘었다. 천호점 무역센터점이 각각 2배 가까운 1백29%,95%의 증가율을 보였고 본점과 신촌점도 52%와 42%의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미아점의 증가율도 19%에 달했다. 주말 오후 본점 매장에서 만난 주부 정민숙씨(53)는 "추석 일주일 전인 다음주 주말이면 사람들이 밀려들어 복잡할 것 같아 한 주 서둘러 들렀다"고 말했다. 현대 본점 식품팀 이창환 부장은 "작년 추석 때와는 달리 올해는 판촉행사와 사은행사를 동시에 벌이고 있는 점이 매출 급증의 한 요인이 되고 있긴 하지만 아무튼 올 추석 경기는 괜찮은 편"이라고 말했다. 또 "추석 매출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단체주문 물량도 작년 추석에 비해 20% 정도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할인점에도 활기가 넘친다. 국내 최대 농산물 소매점인 농협하나로클럽 양재점은 지난 7,8일 이틀 동안 3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평소에 비해 20% 가량 늘어난 금액이다. 조송휘 점장은 "태풍 영향으로 물품 수급이 어렵지만 가격 상승폭이 예상보다 작아 추석경기를 낙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일 값이 오르자 건강식품이나 한우세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며 "추석 매출이 지난해보다 10% 이상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재래시장="재래시장 상황을 모르시는가 본데,추석 대목 잊은 지 오래됐어요."(동대문 P상가 여성복매장) "지나다니는 사람은 많아도 선뜻 지갑 여는 사람은 없어요. 외환위기 이후부터 계속 그래요."(동대문 H지하상가 캐주얼매장) "값 싸면 뭐해요. 백화점 할인점으로 가지 차 댈 곳도 없는 이곳에 누가 오나요."(중부시장 S청과상회 사장) 추석이 1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서민들이 자주 찾는 동대문과 중부시장에는 대목경기를 찾을 수 없다. 시장 입구에는 손님을 유혹하는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음악도 시끄럽지만 한 발만 안으로 들여놓으면 열기는 금방 사그라진다. 을지로4가역 인근,설립된 지 43년된 중부시장. 건어물 제수용품 청과류 등을 팔고 있는 전형적 재래시장인 이곳 제일상회 김상기 사장은 "추석이 다가올수록 남아있던 단골과 근처 주민들마저 백화점과 할인점 세일로 빠져나가 매출이 오히려 줄어든다"고 털어놓았다. 중부시장 옆 샛길에 형성된 굴비골목. 죽방멸치 건오징어 마른안주류 등을 시중가보다 30∼40% 가량 싸게 팔고 있다는 중부유통 장서호 사장은 "같은 죽방멸치가 백화점에서 5배 가량 비싼 가격에 불티나게 팔리는 것을 보면 울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동대문패션타운의 의류도매시장도 상황은 비슷하다. 청바지 매장을 운영 중인 디자이너클럽 2층 전성수 사장은 "월드컵 때 허탕치고 수해와 태풍으로 한참 쉬었는데 추석을 앞두고도 별다른 열기를 느낄 수 없다"며 낙담했다. 경품권을 받기 위해 패션몰 누죤 입구에 줄을 서있는 상인들이 전하는 지방사정도 다르지 않다. 대구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전찬호씨는 "지방 시장도 썰렁하긴 마찬가지"라며 "오늘 산 물량이 작년 추석 대목의 절반에 불과하다"고 털어놨다. ◆추석물가 예상보다 안정세=수해와 태풍을 겪으면서 물가가 폭등할 것이란 우려가 많았지만 예상보다 심각하지는 않다. 과일 채소류 등 일부 품목이 급등세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 지난 설 때와 별 차이가 없다. 과일 중에선 사과 값이 많이 올랐다. 백화점에서 선물용 사과 상등급 1상자(15㎏) 가격은 지난 설에는 7만∼8만원이었지만 지금은 11만∼12만원으로 50% 이상 급등했다. 노지에서 재배하는 사과가 태풍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반면 대표적인 추석용 과일인 배는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값이 거의 오르지 않았다. 지난해 11만원선이던 배 1상자(15㎏) 값은 12만원으로 소폭 오르는 데 그쳤다. "원래 배와 사과의 추석 수요는 7 대 3 정도인데 올해는 사과 값이 급등해 9 대 1이 될 것"(현대백화점 이창환 부장)이라는 게 유통업계의 관측이다. 하지만 배추 무 등 일반 채소류의 가격이 급등한 점이 큰 부담이다. 잇단 수해와 태풍의 영향으로 배추 값이 2배 이상 급등했으며 흙대파 깐대파 미나리 등도 50% 넘게 값이 뛰어 살림살이를 압박하고 있다. 백광엽·이관우·송형석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