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기의 회복지연과 '더블 딥(Double Dip:이중 경기침체)' 우려로 우리 주식시장도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의 배경에는 수출, 특히 대미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미국이 기침만 해도 한국경제는 독감에 걸리고 미국이 독감에 걸리면 한국은 폐렴을 앓는다'는 비유가 현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이러한 해바리기식 대미 의존 사고를 버려야할 때라고 본다. 우선 지난해 한국의 수출 가운데 미국에 대한 수출은 20%에 불과했다. 10년전 만 해도 대미 의존도가 50%에 육박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그 대신 아시아에 대한 수출비중은 날로 증가하여 40%를 넘어서고 있다. 그 중에서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는 이미 15%에 달했다. 또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소비의 비중이 60%에 이르러 수출과 설비투자 부문의 부진을 상쇄해 나가고 있다. 우리 경제도 이제 선진국처럼 소비 의존형 구조로 변모하고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로스토우(Rostow)가 제시한 경제발전 단계를 접목해 볼 때 한국의 경제는 60년대의 도약준비기, 70~80년대의 도약단계, 90년대의 성숙단계를 거쳐 이미 고도의 '대량소비 시대'의 초입에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대량 소비사회는 생산부문이 자본재와 투자재에서 내구소비재와 서비스로 이행되는 특성을 지닌다. 20세기 후반 서구의 각국에서 목격된 바와 같이 이 시기에는 개인의 실질소득이 증가해 많은 사람들이 기초적인 의식주 문제를 초월하여 보다 자유롭게 소비와 여가를 선호한다. 인구의 구성도 도시인구의 비율이 크게 증가해 사무직및 서비스 업종의 종사자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대량소비 사회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힘은 잉여자본의 축적이다. 한국은 이미 설비투자의 포화 내지는 성숙기에 접어들어 기업의 자금수요가 현저히 감소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도약기에 팽배했던 투기적 자금 가수요도 크게 줄어들고 있다. 반면에 외환보유고는 계속 늘어 한국은 이미 자금잉여 국가의 반열에 속하고 있다. 지난 개발연대에 생산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선진국에서 차관을 들여오고 국내에서도 한정된 자원을 끌어 모으기 위해 사채시장이 번성하고 금리는 만성적인 고금리를 유지했다. 최근 한자릿수로 고착된 저금리 구도는 저축보다는 소비의 한계효용을 자극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노동계의 '주 5일 근무제' 요구에서 보듯 여가 선호 현상이 확산되고 있어서 소비의 증가는 필연적인 귀결이 될 것이다. 또 인터넷과 사이버 쇼핑의 확산은 사회적 풍요기에 태어난 신세대들의 소비성향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기업 역시 디자인의 잦은 변경을 통해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을 단축시키고 있어 한국은 바야흐로 소비천국의 초입에 들어선 느낌이다. 최근 주식시장에서도 이같은 시대 흐름을 반영해 백화점 홈쇼핑 음식료 의류 등 내수및 소비관련 주식이 수출및 IT(정보기술) 관련주에 비해 상대적인 수익률 우위를 안겨 주고 있다. 일부에서는 소비관련 주식의 초과수익 행진을 약세장에서 흔히 목격하는 테마성 헤프닝 정도로 폄하하고 있지만 필자의 견해로는 소비관련주의 선전은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상당 기간 도도한 흐름으로 자리잡을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내수주, 수출주, 전통주, IT주 등의 이분법적인 접근보다는 사회의 구조와 산업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바뀌고 그 과정에서 성장과 수혜가 예상되는 종목군이 무엇인지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의 소비산업과 소비관련주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