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근무 기피가 산업계를 멍들게 한다.' 지방근무 기피로 제조업체가 홍역을 치루고 있다. 현대자동차 경영진은 지난 2000년 인수한 기아자동차의 연구인력 수준이 뛰어난 것에 크게 놀랐다. 그 이유를 분석한 결과는 간단했다. 기아자동차 연구소가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 소하리에 있는데 비해 현대차의 주력 연구소는 울산에 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문화생활,자녀 교육 등을 위해 다소 불이익이 있더라도 서울이나 수도권에 살고 싶어하는 연구원이 많다고 조사된 것이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기아차와 연구개발 부문을 통합하면서 울산연구소 연구인력의 3분의 2 정도를 지난 96년 설립된 경기도 화성군 남양종합기술연구소로 옮겼다. 이로 인해 84년 설립된 울산연구소는 경차와 소형차 연구를 맡게 됐다. 이에 비해 남양연구소는 중대형차를 연구 개발하는 주력 연구소로 그 위상이 높아졌다. 상장 화학업체인 A사는 지난해 수도권 건물 총량규제 등의 이유로 경기도에 있는 공장의 설비 증설이 어려워지자 충남으로 옮기는 방안을 한때 검토했다. 이 경우 공장 옆에 있는 연구소의 이전도 불가피했다. 그러나 충남지역으로 연구소가 가면 지역적인 한계로 우수 인력을 뽑기가 어렵다는 지적에 따라 이를 백지화했다. 이 회사는 올들어 처음으로 대졸신입사원을 경영지원직,영업직,기술직,연구개발직,상품기획직으로 구분해 선발했다. 종전까지는 이공계와 인문계로 뽑았다. 직군별로 관리해 전문성을 높이면서 지방 공장에서 근무할 엔지니어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엔지니어 조건으로 뽑힌 기술직 5명은 당초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고 버텼다. 결국 회사측은 3명을 연구직으로 바꿔주고 말았다. 포스코 인사담당자들도 신입사원과 면담할 때마다 똑같은 질문을 받는다. "기술계도 서울에서 근무할수 있습니까"라는 것이다. 포스코는 입사한 뒤 포항이나 광양으로 발령받은 신입사원중 상당수가 서울 근무를 요청함에 따라 올부터는 아예 입사 지원을 받을 때부터 근무지역을 미리 적어내도록 채용제도를 바꿔버렸다. B화학 관계자는 "최근 입사한 대졸 신입사원중 대구와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한 사람조차 서울 근무를 희망했다"며 "지방으로 발령이 나면 그만두기 일쑤"라고 전했다. 지방 근무를 기피하는 원인으로는 자기계발 기회가 부족하고 여건이 나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원하는 대학원이나 학원에 다니기가 힘들고 변리사나 MBA 관련 정보나 자료를 얻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본사와 공장간의 순환근무제도가 현실적으로 지켜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장기간의 공장 근무 생활에 염증을 느낀 엔지니어들은 수도권 전자업체로 이직하거나 변리사 등 자격증을 취득,산업현장에서 '탈출'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