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김밥집 .. 송은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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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일 < 소설가 juhuy91@hanmail.net >
내가 1주일에 한두번은 들르는 '불티나는 김밥' 집의 주된 메뉴는 우습게도 각종 튀김이다.
스무가지도 넘는 튀김들이 김밥 대신 길 가던 손님들을 불러들이는데 맛이 좋아 잘 팔린다.
그건 다행인데,튀김 먹는 손님이 아니라 김밥 손님인 나는 그 집에서 끼니를 때울 때마다 이 집 김밥이 안팔리는 까닭을 알겠다고 혼자 고개를 끄덕인다.
솔직히 김밥 맛이 썩 좋은 편은 아닌 것이다.
내 메뉴를 튀김으로 바꾸면 간단하겠지만 내가 그 가게 단골이 된 것은 거기가 김밥집이었기 때문인데 나도 자존심이 있지,약간 덜 맛있다고 식성을 바꾸겠는가.
그런저런 딜레마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가게에 충성하고 있다.
집에서 2~3분 걸어나가면 되는 자리,4천~5천원이면 두 식구 한끼가 미어질 만큼 채워진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지만 제일 중요한 까닭은 그 집의 보기 좋은 주인 부부에게 있다.
그 가게는 탁자 3개가 들어갈 만한 좁은 공간인데 식당에 있어야 할 건 전부 다 있다.
더불어 다른 데는 없는 주인의 자작 시(詩)와 그림까지 있다.
그 주인 부부가 보기 좋은 가장 큰 이유가 그 시화(詩畵)에서 비롯된다.
불티나는 김밥집이 처음 생겼을 때 김밥을 포장해 달라고 들렀다.
안주인이 김밥을 마는 동안 가게 안에서 기다리게 됐는데 그 때 두 벽면을 채운 시와 그림을 보게 됐다.
소박하지만 예쁜 그림 위에 어엿한 필체로 얹힌 시.갈대발을 벽면에 드리우고 그 위에 붙여놓은 시화를 사뭇 진지하게 보다가 불쑥 터진 웃음을 숨기느라 참 애먹었다.
12행짜리 시에 맞춤법 안맞는 글자가 10개나 됐던 것이다.
누가 쓰고 그리신 거예요? 하고 물었을 때 안주인이 자신의 남편을 슬쩍 가리키는 모습이 너무나 당당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남편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을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안주인과 틀린 글자로도 당당하게 시를 쓸 수 있는 시인에게 어떻게 철자법 따위의 시비를 가리자고 나설 수 있으랴,나는 그날 고양이 앞에 쥐처럼 기가 죽어 김밥을 들고 나왔다.
불티나는 김밥집에선 오늘도 튀김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김밥 맛은 여전하고 맞춤법 안 맞는 시도 여전히,다달이 바뀌어 걸린다.
내 딜레마는 오래도록 계속될 것 같다.
장르를 불문하고 틀린 한글 맞춤법만 보면 고쳐 쓰고 싶은 직업병이 그날 발동할 뻔했는데,그럴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