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보은군 회남면 조곡리 회남교회의 홍승표 목사(37)는 주보를 손글씨로 직접 써서 만든다. 벌써 몇 년째다. 주보에선 홍 목사 자신의 일상적 삶과 생각을 수채화처럼 담아낸 '목회 이야기'가 단연 인기다. 글씨가 삐뚤삐뚤하기도 하고 때로는 틀린 곳을 지운 자국도 그대로 남아 있지만 그의 따뜻한 마음과 깊은 생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홍 목사가 지난 98년부터 최근까지 주보에 실었던 목회 이야기를 '마음 하나 굴러간다'(호미,8천원)라는 책으로 묶어냈다. "어제 산책길에 홍시를 두 개 주웠습니다. 길가에 앉아서 한 개를 먹고 더 먹을까 하다가 '너만 입이냐!'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풀섶에 놓아두고 돌아왔습니다. …나뿐 아니라 너를 헤아리는 마음,사람뿐 아니라 생명을 헤아리는 마음,이 가을,그렇게 맘이 넓어지면 좋겠습니다." 지난 90년 도시 교회를 떠나 생명을 지향하는 목회를 위해 시골로 내려온 홍 목사는 자연과 생명,느림과 여유,일상에서의 깨침,가족,사람간의 관계 등을 강조한다. 그 속에서 하느님의 가르침과 은혜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봄에 돋아나는 산나물을 보면서는 "나도 살고 남도 살리기 위해 고기보다는 풀을 먹는 것이 어떨까요"라고 제안한다. 또 전깃불로 인해 밤낮의 구분이 없어져버린 도시를 향해서는 "불끄고 잡시다"라며 일침을 놓는다. 자신의 일상생활에 대한 반성도 적나라하다. 대전에서 택시를 잡으려다 옆에 있던 여학생이 새치기를 해 타고 가버리자 홍 목사의 입에선 "아니,뭐 저런 년이 다 있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자신도 모르게 뱉어버린 욕설에 놀란 홍 목사는 이내 "오늘 하루 깨어 있지 않으면 큰일 내겠구나"라며 마음을 다잡는다. 시골 교회에서 생명을 지향하며 살던 홍 목사에게 하늘이 무너질 듯한 불행이 찾아왔다. 교통사고로 아내가 먼저 하느님의 부름을 받았다. 집안 곳곳에서 아내의 빈 자리를 느끼지만 큰 슬픔을 대하는 홍 목사의 마음가짐은 마치 산중 선사 같다. "죽음을 통해 가는 길,그건 제가 안 가본 길이요 모르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모를 뿐'입니다. 그것만 분명히 해도 삶이 훨씬 편안할 것 같습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