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마늘협상, 넓은 시야를..安世英 <서강대 국제통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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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라운드 협상때 미국대표였던 슈트라우스는 "관세인하를 위해 상대국과 협상하는 것과 거의 같은 시간을 개방에 반대하는 의회와 산업계, 그리고 노조를 설득하는 데 보냈다"고 말했다.
이어 윌슨,카터 등 미국대통령들도 "3분의2 다수결이 일반화된 미상원에서 34명 소수의 반대 때문에 미국에 필요한 많은 대외협상안들이 빛을 못보고 파기되었다"고 한탄했다.
미국의 대통령과 통상장관이 통상협상에 대한 정치인과 이익집단의 발목 잡기에 대해 한마디씩 한 것이다.
이에 착안해 퍼트남 같은 학자가 연구를 해보니 통상협상이란 흔히 생각하듯 외국과 대외협상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일종의 두 단계 게임으로, 1단계에서 타결된 대외협상안을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국내집단에 비준받는 2단계가 더 어렵다는 것이다.
문제는 내부비준 단계에서 정치인이 특정이익집단의 반발을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려들면 일이 더 꼬인다는 것이다.
이같은 일이 지금 한·중 마늘협상을 두고 우리 눈앞에 벌어지고 있다.
우리 나라의 통상이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한·중 마늘전쟁은 처음부터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정부는 2000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 등 떠밀려 섣불리 마늘로 덤벼들었다가 중국의 강력한 대응보복에 놀라 사실상 굴욕(?)에 가까운 협상타결을 했다.
끝난 일인가 했더니 이제 그 일부내용의 공개여부를 놓고 정치권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부처간 책임전가 공방은 차라리 코미디에 가깝다.
그런데 우리 정치인들은 모두 건망증에 걸렸는지 중국과 재협상을 들먹이고 있다.
우리의 수출대종품목인 휴대폰과 석유화학제품에 대한 보복에 놀랐던 충격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마늘농가의 반발은 당연하다.
민주국가에서 생존권을 위협받은 국민은 이에 항의할 권리가 있다.
문제는 이를 받아들이는 정치권과 정부의 태도다.
우선 정치권은 이 마늘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선 안된다.
WTO체제에서는 '끝까지 보호할 자신' 있는 통상이익만을 고집해야 한다.
1980년대 이후 '농업개방 절대불가'를 외치던 정치권의 말만 믿던 농민들이 그 이후 대세로 밀어닥친 개방 때문에 얼마나 많은 피해를 보았던가.
진정 농민을 사랑하는 정치가라면 먼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솔직히 이야기하고,마늘 작목전환 등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다음으로 협상안의 미공개는 어디까지나 국내적 문제로,이를 빌미로 중국에 재협상을 요구할 명분이 없다.
이미 정부의 잘못에 대해선 관계자의 경질로 마무리되었다.
이를 더 이상 통상이슈화해선 안된다.
중국은 우리의 2대 수출시장으로 CDMA,원전,고속전철사업 참여 등 21세기 우리 경제의 미래가 걸린 '신시장'이란 점을 잊어선 안된다.
정치권을 포함해 우리는 중국과의 통상관계를 보다 넓고 크게 봐야 한다.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제발 소신을 가지고 전략적으로 중국과 협상했으면 좋겠다.
우선 진행 중인 무역위원회의 세이프가드 심의는 법에 따라 투명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쉘링효과'라는 국제협상전략이 있다.
이는 미국이 즐겨 쓰는 전략으로 "보시다시피 국내의 반발이 저렇게 심하니 도저히 더 이상 양보 못하겠다"며 국내의 반대여론을 외국과의 협상에서 역이용하는 것이다.
정부는 무역위원회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를 농민단체의 반발과 함께 앞으로 중국을 상대하는 협상카드로 잘 활용해야 하겠다.
우리 나라는 5천년의 역사 중 오직 지난 1백년만 중국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앞으로 우리 경제는 싫든 좋든 이웃 중국 경제와 어깨를 맞대며 살아야 한다.
이는 중국을 잘 다루면 우리 경제 도약의 발판이 되지만,반대로 마늘협상에서와 같이 중국의 패권주의에 어처구니없이 무릎을 꿇는 악수만 계속 둔다면 마늘농가의 생존권이 아니라,우리 경제의 생존권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syahn@ccs.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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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