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볼 것이 너무 많아 미래 전략은 뒷전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보고서를 짜내느라 시간만 보내고 있다." 모 그룹 구조조정본부 관계자의 푸념이다. 중장기 계획은 손도 못댄 채 기업경영환경을 악화시키는 '정부 변수'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는 불만이다. 미국 경기침체로 경제 상황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혼미한 상황인 데도 '한 건'을 올리려는 정부 당국의 무리수가 기업에 막대한 부담을 주고 있다. 제주도에서 경영자 하계세미나를 열고 있는 손병두 전경련 상근 부회장이 지난 24일 부당내부거래 조사를 '행정편의적 발상'으로, 주5일 근무제 강행을 '반칙'으로 꼬집은 것은 이런 재계의 불만을 대변한 것에 다름 아니다. 실제로 최근 정부가 하고 있는 일을 보면 재계의 이같은 반응이 엄살만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공정거래위원회의 '갑작스런' 부당 내부거래 조사다. '조사설'만 나와도 증시와 외국인투자자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임을 뻔히 알면서도 밀어붙이는 것은 '경제보다는 기업 군기 잡기가 우선'이라는 정치적 고려가 들어 있다는게 재계의 시각이다. 재계와 노동계가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한 주5일 근무제를 정부가 강행하려는 것도 선거공약 달성을 염두에 둔 '한건주의'로 볼 수밖에 없다고 기업인들은 보고 있다. 여기다 미국이 회계 기준을 강화하는 것에 맞춰 기업 회계기준 자체를 손질하려는 움직임도 기업엔 부담이 되고 있다. 결합재무제표 등 미국에 비해 훨씬 강화된 회계기준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급할 것이 없는데도 스톡옵션 회계처리 규정 등을 강화하려는 것은 '일을 찾아서 만들어내는 관료주의적 속성'이라는 지적이다. 재계의 이같은 불만은 기업들이 '본연의' 활동에 신경 쓰기 힘든 최악의 경영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데 있다. 노사분규만 하더라도 올들어 이달 24일까지 2백30건이 발생, 지난해 전체 분규발생일수(2백34건)에 육박하고 있다. 분규일수 기준으로는 1백8만4천6백52일로 지난해 수준(1백8만3천79일)을 이미 넘었다. 경총 관계자는 "주5일 근무제 등으로 노동계의 기대치를 높여 놓은 것이 실수"라며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노동계의 요구 수준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권영설 경영전문기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