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인방도 내손 안에.' '비금도 독수리' 이세돌 3단의 최근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이창호, 유창혁, 조훈현 9단 등 국내는 물론 세계바둑계의 '빅3'마저 이 3단의 상승세에 추풍낙엽 신세다. 가장 먼저 제물이 된 기사는 유 9단. 지난달 24일 한국기원에서 벌어진 KTF배 결승 3국에서 이 3단은 유 9단을 단 95수만에 흑 불계승로 제압하며 종합전적 2승1패로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이 3단은 지난 2000년 이 대회 전신인 배달왕기전 결승에서도 유 9단을 접전 끝에 3 대 2로 물리치고 우승컵을 차지했다. 이 3단의 예리함에 '세계 최강' 이창호 9단도 예외일 수 없었다. 이 3단은 지난 6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후지쓰배 준결승에서 이 9단을 2백수만에 백 불계승으로 이기고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이 3단으로서는 지난해 LG배 결승에서 초반 2연승 뒤 3연패로 이 9단에게 타이틀을 내준 아픔을 통쾌하게 설욕한 것이다. 신예 기사들에게 유달리 강해 '훈련교관'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조 9단도 이상하게 이 3단만 만나면 힘을 못쓴다. 10일 열렸던 왕위 도전자 결정전에서 이 3단은 2백51수까지 가는 혈전 끝에 조 9단에게 극적인 흑 반집승을 거두고 도전자로 나서게 됐다. 특히 이날 승리로 이 3단은 최근 조 9단에게 내리 7연승, 조 9단의 천적임을 입증했다. 수읽기가 빠르고 전투력이 강해 한때 '리틀 조훈현'으로 불리기도 했던 이 3단은 입단 후 조 9단에게 5판을 내리 졌지만 이후 거꾸로 7연승하며 상대전적에서도 7승5패의 우위를 점했다. '바둑황제' 조 9단이 이창호가 아닌 특정인에게 이같이 연패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바둑계는 이에 대해 "조훈현이나 이창호 같은 강자를 만나면 미리 주눅이 드는 게 보통인데 이 3단은 전혀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반전무인(盤前無人)의 자세로 대국에 임하는 것이 좋은 성적을 내는 비결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후지쓰배와 왕위전 결승의 이 3단 상대는 공교롭게도 유창혁 9단과 이창호 9단이다. 93년과 99년 두 차례 정상에 오르며 후지쓰배에서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는 유 9단은 이번 만큼은 본때를 보여주겠다며 벼르고 있다. 단판 승부에서는 의외의 일격을 허용했지만 이 9단도 5번기 승부인 왕위전에서는 후배의 도전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이 3단의 비상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바둑계는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