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자원부라면 아직도 옛 '상공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산자부 안에서도 상공부 시절의 영화(榮華)를 되돌아보는 직원이 적지 않다. 1970년대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총괄했던 상공부는 경제기획원.재무부와 어깨를 견주며 '3각 편대'를 이뤘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후발부처인 정보통신부가 "정통부 중심으로 산자부와 통합하자"고 공개적으로 도전장을 던지는 상황이 됐다. 한때 실물경제를 주름잡던 '상공부'의 힘이 이전보다는 많이 빠졌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상공부 시절 상역국장(현 무역정책심의관)은 재무부 이재국장(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경제기획원 기획국장(현 재경부 경제정책국장, 예산처 재정기획국장)과 함께 '경제부처 3대 요직 국장'으로 불렸다. 매달 청와대에서 열린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주관하면서 수입허가 쿼터 배정과 같은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었다. 부처간 정책조율이 제대로 안될 때는 타 부처 국장이 상역국장에게 부탁하는 일도 잦았다. 당시 재계 총수들도 하루가 멀다 않고 상역국장에게 "식사라도 한번 하자"며 줄을 설 정도였다. 현 신국환 장관도 상역국장 출신이다. 그러나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상공부는 '규제의 사슬'로 재계를 주무르던 막강 파워를 스스로 포기했다. 무역 자유화(개방)와 산업구조 고도화 추세에 발맞춰 서비스 행정기관으로 변신을 시도한 것. 지난 86년 7대 개별 산업육성법을 공업발전법(현 산업발전법)으로 통폐합, 규제와 보조금을 대대적으로 철폐했다. 업종 중심의 미시적 산업정책도 기술 개발과 인프라 구축, 산업 분산 등 기능 위주의 거시적 지원정책으로 급속히 전환했다. 이때부터 상역국과 공업국의 명성은 퇴조했고 대신 산업정책국이 핵심 부서로 부각됐다. 산정국은 현재 다른 부처와 정책을 조율하는 창구 역할을 맡는 동시에 업계의 애로사항을 듣는 창구 노릇을 하고 있다. 또 구조조정, 산업입지, 지방산업 육성, 유통, 전자상거래 등 기능별 정책 조정을 통해 전 산업의 미래 청사진도 그린다. 8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의 컬러TV 반덤핑 결정 등 선진국의 수입 규제와 시장 개방 압력이 거세지면서 통상교섭 분야도 핵심 기능으로 새로 떠올랐다. 특히 지난 88년 미국의 종합통상법 발효로 '슈퍼 301조'가 탄생하면서 당시 제1차관보 산하의 통상국들이 전위부대로 나섰다. 걸출한 통상 스타들도 이때 쏟아져 나왔다. 84년부터 90년 초까지 6년간 제1차관보(통상 담당)를 역임한 김철수 세종대 총장은 상공자원부 장관과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차장을 지냈다. 김 총장을 뒤이은 한덕수 통상정책실장은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을 거쳐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입성해 있다. 황두연 통상진흥국장은 KOTRA 사장을 지낸 뒤 2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영전했다. 그러나 현 정부 출범때 경제부처의 통상 부서들이 외교통상부의 통상교섭본부로 통합됨에 따라 산자부의 통상교섭 업무는 사실상 없어졌다.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국제협력투자심의관실만 겨우 남아 있다. 산자부는 90년대 들어 세차례에 걸쳐 대규모 조직 개편이란 수술을 받았다. 93년 김영삼 정부 출범으로 상공부와 동력자원부가 통합돼 상공자원부로 새출발했고 94년 말엔 통상산업부로 간판을 바꿔 달면서 공업국과 자원국들을 절반 이상 정리했다. 현 정부 들어서면서 통상 분야까지 떨어져 나가 지금의 산업자원부로 단출해졌다. 외환위기 이후 신산업 육성정책에 따라 요즘은 산업기술국이 새로운 핵심 부서로 '뜨는' 분위기다. 특히 올해 산업기술 개발자금 규모가 1조원을 돌파하면서 연구개발(R&D)의 중심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발전 가스 등 대형 에너지 공기업의 민영화 작업이 추진되면서 전기위원회와 에너지산업심의관실 등 자원정책실 산하 부서에도 무게가 실리는 추세다. 산업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이에 적응하려는 산자부 직원들의 학구열도 남다르다. 이병호 산업기술국장, 나도성 공보관, 고정식 전기위 사무국장, 정만기 무역진흥과장, 한장섭 산업기술개발과장, 김경수 반도체전기과장, 김준동 전자상거래지원과장 등 30여명이 국내외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 김종갑 산업정책국장, 김상열 생활산업국장, 이재훈 미국 워싱턴상무관, 박봉규 무역정책심의관, 홍기두 자본재산업국장, 조석 총무과장 등 10여명은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정한영 기자 c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