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산호세 북쪽의 노스 퍼스트 스트리트는 "실리콘 코리도"로 불린다. 삼성전자 하이닉스 히타치 인피니언 등 유수의 반도체 업체들이 들어선 이 곳에서도 어김없이 불황으로 인한 고통을 느낄 수 있다. 날이 갈수록 건물 입구에 내건 임대 간판이 늘어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공실률이 40%를 넘어섰고 임대료도 평방피트당 1달러 미만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희망을 말한다. 실리콘밸리는 광풍에 휩쓸리기 이전 상태로 되돌아갔을 뿐이고 현명한 이들에게 지금이 최고의 기회라는 것이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 스티브 벵스턴 이사는 "싸게 사무실을 빌리고 우수한 인재를 적은 급여로 채용할 수 있으니 창업하기에는 적기"라고 강조한다.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패트리샤 케리 슈웰츠 소프트웨어시스템그룹 부사장은 "사라진 기업의 기술과 비전은 현재 주류로 자리잡았으며 이제 혁명의 첫 장이 시작되고 있을 뿐"이라고 진단했다. 이 혁명의 시발점 가운데 하나는 무선통신 기술이다.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을 구축하기 위해선 무선이 필수적인데다 무료 서비스로 인해 수익을 얻지 못했던 유선과 달리 무선은 처음부터 유료가 대세로 자리잡았다. 휴대폰으로 손쉽게 동영상을 구현하는 솔루션을 개발한 제너레이션픽스의 피터 윤 사장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화면을 받아볼 수 있기 때문에 보안업체를 중심으로 솔루션 구입 문의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레드포인트 벤처스의 존 왈레츠카는 "무선통신 시장의 규모는 향후 엄청나게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수많은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특히 "무선통신도 유선과 마찬가지로 인터넷프로토콜(IP) 기반으로 발전하고 고속화(브로드밴드)될 것"이라며 무선 IP기술을 기반으로 한 사업이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바이오 분야도 엄청난 폭발력을 갖고 있다. 특히 유전자 분석작업 등을 수행하기 위해선 엄청난 '컴퓨팅 파워'와 발달된 데이터 처리기법이 필요하기 때문에 바이오와 정보기술(IT)의 결합은 필수적이다. 시장조사기관인 IDC에 따르면 바이오와 IT의 융합기술인 '바이오정보기술(BIT)'의 세계시장 규모는 지난해 1백30억달러였지만 매년 평균 24%씩 성장,오는 2006년 3백8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극미세 세계를 다루는 멤스(MEMS·미세전자기계시스템)와 나노기술도 성장 잠재력이 무한한 분야다. 멤스를 활용해 광통신 장비를 개발하는 아이오론사는 벤처캐피털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도 최근 8천5백만달러의 투자자금을 유치했다. 이 회사의 존 클라크 사장은 "고객 지원과 직접 관련된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지출을 대폭 줄이면서 기술 개발 등에 집중한 결과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새 성장엔진을 찾기 위한 노력은 미국정부의 투자 규모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의 연구개발 예산 중 IT분야 비중은 43.3%에 달하지만 미국은 1.9%에 불과했다. 대신 미국의 바이오 투자는 25.9%에 달한다. 실리콘밸리=정건수 특파원.김남국 기자 ks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