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의 독화살에 썩어든 영혼..존 월시, 키츠 평전 '죽기 1백일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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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내려오던 스페인 광장 계단.그 옆 광장이 훤히 내다보이는 곳에 영국 시인 존 키츠가 살았던 작은 아파트가 있다.
25세의 키츠는 무정한 애인 때문에 폐병을 얻었다.
봄에 로마에서 아가씨들이 오르내리는 계단을 바라보며 죽는 것은 슬픈 일이다.
존 월시가 쓴 키츠 평전 '죽기 1백일전에'(마음산책,이종인 옮김,1만5천원)는 서머싯 몸의 소설 '인간의 굴레'를 연상시키는 책이다.
'인간의 굴레'에서 주인공 필립 캐리는 하찮은 웨이트리스 밀드레드를 짝사랑하여 노예처럼 끌려다닌다.
키츠 또한 방탕한 애인 때문에 삶의 절정기에 펜을 놓아야 했다.
키츠 시의 원천이었던 그 사랑은 시인의 영육을 갉아먹은 사악한 정념이었다.
1795년 런던에서 태어난 존 키츠는 바이런 셸리와 함께 영국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3대 시인으로 꼽힌다.
'빛나는 별이여,나 너처럼 변함없는 존재이길 바라노라'로 시작되는 키츠의 연애시는 오늘날에도 인구에 회자되는 명편이다.
키츠는 약관 20세에 셰익스피어 워즈워드의 뒤를 잇는 시인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키츠는 어느날 파티에서 재기발랄한 처녀 파니 브라운을 만난다.
파니는 무도회에서 남자들과 춤추는 것을 즐기는 천박한 여자였다.
그러나 에로스는 키츠의 가슴에 화살을 쏘았고 키츠는 살맞은 짐승처럼 피흘리며 죽어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희롱하는 여자에 대한 사랑을 거둘 수 없었던 키츠는 어느날부터 각혈하기 시작했다.
청진기도 없던 시절 의사들은 위장병인지 폐병인지 가려내지 못했다.
폐병이라 하더라도 변변한 치료약이 없어 아편제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삶은 물 위를 걷는 것,머리를 날카로운 돌 위에 얹는 것과 같다.' 죽음을 예감한 키츠는 제레미 테일러의 수필집 '거룩한 죽음'에서 위안을 얻은 듯하다.
'당신의 인생을 평가하면서 쾌락을 누린 시간,욕망의 성취 등으로 재지 말라.사람들은 밤을 바라면서 낮을 허송하고,낮을 기다리면서 밤을 탕진한다.
희망과 헛된 기대 속에서 우리는 삶을 낭비한다.'
키츠는 영국에 있는 파니를 그리워하며 이탈리아에서 혼자 죽었다.
키츠가 세상을 떠난 뒤 파니는 12세 연하의 남자와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었다.
키츠의 편지를 인용,출판하게 해달라는 문단의 요청에 대해선 키츠를 문학사에 남을 인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묵살했다.
파니는 노인이 되어 죽기 전에 키츠의 편지가 돈이 될 터이니 경매에 부치라고 유언하기도 했다.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