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의 월드컵16강행 여부가 오늘(14일)판가름 난다. 상대는 펠레가 우승후보중 하나로 꼽은 포르투갈. 비기기만 해도 자력으로 16강 반열에 오르지만,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여론은 알게 모르게 몇몇 선수에게 뭇매를 가하고,모두는 한동안 집단우울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결과가 빚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대로 희망은 힘이 센 것. 그동안 우리 선수들이 확인시켜주었던 자신감에 그 힘이 보태진다면 16강이 아니라 그 이상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최악의 경우가 현실화되어도 개의치 말 일이다. 여전히 변함없는 일상을 향한 "뒤로 돌앗!". 그리고 평상심(平常心)... 설악산(1,708m). 동해를 따라 내리뻗은 백두대간 줄기의 가장 높은 봉우리. 우람한 덩치로 우뚝한 내설악지구의 한 중심축을 이루는 12선녀탕계곡(탕수동계곡)을 찾는다. 대승령(1,260m)과 안산(1,430m)에서 발원,인제 북면 남교리까지 이어지는 총 8km 길이의 깊은 계곡이다. 한층 짙어진 6월의 녹음으로 뒤덮인 호젓한 길이 흐트러진 마음을 정돈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46번국도 옆 북천(北川)에 가로놓인 선녀교 너머 쉼터 왼편으로 돌아 신발끈을 고쳐 맨다. "4.1km요.12선녀탕까지 가는데만 2시간반입니다." 매표원의 말에 마음은 "룰루랄라". 그정도면 가뿐하다. 중년부부 한쌍이 여유롭게 앞서간다. 한사람이면 꽉 찰 정도로 좁은 길은 평탄하다. 왼편으로 계곡의 마른 물소리,아래로 쓸어 내리는 바람소리가 시원하다. 녹음이 하늘을 가려 벌써 계곡 깊이 들어와 있는 듯 하다. 20분쯤,빨간색이 바랜 철다리를 건너 계곡을 가로지른다. 왼편으로 그늘진 작은 소(沼)가 꽤 깊어 보인다. 숨 한번 내쉬면 두번째 철다리. 한 대학 산악회의 조난사고 위령비가 마음을 숙연케 한다. 맨들맨들한 너럭바위를 타고 넘는 물살이 왠지 빨라 보인다. 다시 종이위의 손가락 그림이 방향을 표시해주는 V자 비탈길을 따른다. 지난 가을 떨어진 낙옆이 내내 수북하다. 음나무,서어나무,황철나무,함박꽃나무,다릅나무 등 이름도 낯선 나무들이 수목원을 방불케 한다. 그렇게 3개의 짧은 철다리를 지나자 하나로 된듯한 너럭바위가 나타난다. 등줄기에 땀이 흥건하다. 돌아서 내려오던 예닐곱명의 부인네들이 손수건에 물을 적셔 땀을 씻는다. 그 너머 10분거리에서 이 계곡의 첫번째 장관인 응봉폭포를 마주한다. 계곡을 막고 선 15m 높이의 수직바위덩이 아래로 하나의 물줄기가 쏟아져 내린다. 가물은 탓인지 물줄기의 힘이 조금은 약하다. 오른편 철계단을 올라 폭포상단에서 내려보는 계곡미가 장쾌하다. 폭포 뒤로 이어진 길은 만만치 않다. 50분 힘겨운 걸음끝의 6번째 다리를 중심으로 한 풍경이 그림같다. "선녀탕까지 30분만 더 가면 됩니다." 반대편에서 대승령을 넘은 듯한 산행객의 말에 힘을 내 일어선다. 처음 예상보다 30분이 더 지난 시간.드디어 선녀탕이 수줍은 모습을 드러낸다. 밤이면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는 곳이란 얘기가 그럴싸하다. 12개의 탕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8개뿐. 사연은 이렇다. 하늘의 깨끗한 물을 담아놓을 소(탕)를 만들라는 옥황상제의 명을 받은 12명의 선녀가 용례(용대리)의 아름다움에 반해 12년만에 12개의 소를 완성했다. 그런데 일에 지친 네 선녀가 그만 숨을 거두었고,남은 8선녀가 이들을 각각의 탕에 묻어 8탕8폭만 남게 되었다는 것. 첫탕인 독탕에서 30여분. 두번째 북탕,세번째 무지개탕이 실에 꿰어진 푸른구슬 처럼 이어진다. 암반을 타고 흐르는 맑은 물이 바위탕을 만들고,탕 마다 넘치는 물이 폭포를 이뤄 시원하다. 복숭아탕이라고도 불리는 맨끝의 용탕은 자연의 신비로움을 그대로 전해준다. 이름 그대로 바위속에 박힌 커다란 복숭아씨가 쏙 빠져 이루어진 듯한 형상에 눈을 뗄수 없다. 세시간여의 산행길이 힘들었다는 생각이 싹 가신다. 그래서 설악,그래서 12선녀탕이구나. 설악산(인제)=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