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전 응원전에서 시민의식은 단연 돋보였다. 가마솥처럼 달아오른 '응원열기' 속에서도 축구팬들은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경찰은 과열된 군중심리로 인해 '반미감정 표출' 등 만일의 불상사를 우려했으나 국민수준은 '당국의 눈높이'를 훌쩍 뛰어넘었다. 한-미전이 열린 대구와 사상 최대규모의 길거리 응원전이 벌어진 서울에서 월드컵과 관련된 구조.구급 신고가 한건도 접수되지 않았다. 광화문 주한미국대사관 등 미국관련 시설들을 철통경비했던 경찰이 머쓱해질 정도로 시민들은 월드컵을 '스포츠잔치'로 즐기는 세련미를 과시했다. 서울시는 이날 오후 2시30분부터 응원인파가 대거 몰리자 광화문과 시청 광장에서 가까운 지하철 1,2호선 시청역을 무정차 통과하도록 했으나 시민들이 줄서기 등 높은 질서의식을 과시하자 곧바로 무정차통과 방침을 철회했다. 전국에서 1백만명을 헤아린 길거리 응원단은 미국팀에 대한 비방이나 야유 등을 삼갔고 간간이 미국팀을 야유하는 목소리가 들리면 자제를 촉구할 정도로 성숙된 모습을 보여줬다. 경기관전중 서울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국지성 호우가 쏟아졌지만 응원단원들은 대열을 흐뜨리지 않고 '코리아'를 외쳤다. 서울 시청앞에선 뒷좌석 관중들이 전광판을 볼 수 있도록 일부러 우산을 접고 비를 맞는 시민도 눈에 띄었다. 친구들과 함께 광화문을 찾은 최성규씨(35)는 "태극전사들의 실력에 뒤지지 않은 시민이라는 것을 세계에 과시하자고 같이 응원나온 친구들과 다짐했다"고 말했다. 일부 시민단체등이 주도하는 만일의 반미기습시위가 우려됐던 대구 월드컵경기장에서도 불미스러운 일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