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美利堅과의 축구 .. 朴星來 <한국외대 과학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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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의 축구시합에서 꼭 이겨야겠다는 결의가 하늘을 찌르는 듯하다.
하지만 월드컵 한·미전보다 우리에게 훨씬 중요한 일은 13일의 지방선거다.
축구는 누가 누구와 시합을 해도 결국 축구일 뿐이지만,우리 선거는 우리 삶을 좌우해 줄 중요한 행사이니 말이다.
그런데 신문에 보도되는 것을 보면 '지방 선거'가 아니라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고 있는 형국이다.
신문들은 매일 양대 후보의 동향을 사진과 함께 보도하고 있으니 말이다.
방송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이렇게 가열되는 '대통령 선거전'을 보면서 생각나는 일은 1세기 전 조선인이 본 미국 대통령선거 모습이다.
조선왕조 최초의 미국공사는 박정양(朴定陽·1841∼1904)이었는데,그가 남긴 기록 '미행일기(美行日記)'가운데 미국 대통령선거에 관한 것이 있다.
-미국은 1787년(실제로는 1776년) 워싱턴의 독립 이래 헌법을 정해 군주 세습 없이 매 4년에 한번 투표로 대통령을 뽑게 됐다.
지금 대통령 클리브랜드(勤來班蘭多)는 명년(明年)이 임기여서 올해 예선이 있다.
미국엔 두 당이 있는데,하나는 북당(北黨,洋音 늬파불) 다른 하나는 남당(南黨,洋音 땍막클리틔)이다.
각 당 사람들이 2명을 뽑아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로 하는데,남당은 필라델피아(匹羅達皮阿州)에서 모여 클리브랜드(勤來班蘭多)와 절문(節文:오하이오 거주) 두 사람을 뽑았고,북당은 오하이오(五河要)에 모여 해로신(海魯臣:인디아나·印度亞那 거주)과 모둔(毛屯:뉴욕·紐約 거주)을 뽑았다.
신문에 그들 이름과 사진, 그리고 그들 행동에 대해 나니,사람들이 의론이 분분하다.
내년 2월에 확정한다고 한다.
-1888년 5월18일 그의 일기에 남긴 글이다.
처음으로 '늬파불,땍막클리틔'라는 영어(洋音)의 한글표기가 남아 있는 것도 재미있는 기록이다.
박정양은 그의 일기를 당연히 순한자로 썼는데,이렇게 가끔 한글표기로 영어 발음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북당은 공화당이요,남당은 민주당이다.
박정양은 이미 미국의 집권자를 '대통령'으로 부르고 있는데,이 말이 정착한 것에도 상당한 역사가 있다.
1882년의 조미(朝美)수호통상조약 본문 제1조에는 미국 대통령을 '백리새천덕(伯理璽天德)'이라 한자로 쓰고 있다.아직 적당한 호칭을 발견하지 못해 프레지던트(President)라는 그 나라 말을 우리 발음으로 표기한 것이다. 그것도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발음은 아니고,중국식이어서 이런 괴상한 표기로 된 것이다.이 조약에 따라 이듬해 미국에 파견된 보빙사(報聘使)의 공문엔 순한글로 대통령이란 말을 '대백니새쳔덕'으로 표기하고 있다.
'대'는 높여서 대(大)자를 붙인 것이고,'백니새쳔덕'은 앞에 소개한 한자를 순한글로 나타낸 것이다.
이 때 가져간 우리 정부의 공문은 순한글이다.
최한기(崔漢綺:1803∼1877)가 1857년에 쓴 '지구전요(地球典要)'에는 미국이란 나라 이름을 미리견(米利堅)으로,대통령을 발렬서령(勃列西領)으로 표현하고 있다.
발렬서령이란 표현은 역시 중국어로 발음하면 '프레지던트'를 나타내려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조선의 최한기가 그의 책을 쓰는데 참고한 중국의 '해국도지(海國圖志)'에는 미국을 미리견국(彌利堅國 또는 美利堅國)으로 표기했고,대통령은 발렬서령이라 하고 있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미국을 한자로 나타내는 데에는 세가지(美,彌,米國) 모두 그럴 듯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대통령'이란 표현은 아무래도 일본의 철학자 서주(西周:니시 아마네 1829∼1897)가 그 제안자인 듯하다.
1862년 막부(幕府)의 명령에 따라 네덜란드에 유학했던 그는 1865년 귀국,메이지유신(1868) 직전 제15대 장군(將軍: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의 고문으로 '의제 복고(議題腹稿)'란 헌법 초안을 만들었다.
여기서 그는 막부 장군을 '일본국 대통령'이라 쓰고 있다.
그의 안(案)대로 도쿠가와 막부의 쇼군이 일본 대통령이 되지는 않았지만,그 말은 이후 한자문화권에 퍼진 것으로 보인다.
우리에게 지방 선거,그리고 대통령 선거가 더 중요하긴 하지만,오늘 당장 축구에서만은 미국을 이기고 싶은 것이 한국인 모두의 마음일 것 같다.
parkstar@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