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회계사에게 까지 부실책임시비를 거는 등 회계업계에 도움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A회계법인 고위 관계자) 공인회계사(CPA)의 위상이 급추락하고 있다. 미국 엔론사태로 회계투명성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과는 반대로 회계법인과 회계사의 부담은 날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실회계 책임을 묻는 소송도 잇따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공인회계사를 한해에 1천명씩 뽑다보니 회계사 자격증을 갖고도 일자리를 못 구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사면초가 회계법인=회계업계는 대규모 송사위기에 직면해 있다. 예금보험공사는 최근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의 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과 공인회계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벌일 태세다. 최근 개인투자자들이 한 코스닥등록기업 기업주와 회계사를 상대로 분식회계에 따른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벌여 승소판결을 얻어냈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분식회계를 묵인한 공인회계사에게 징역형을 내릴 수 있는 내용을 담은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감독당국도 분식회계에 연루된 회계법인들에게 무더기 징계조치를 취한데 이어 외부감사인의 독립성을 위해 회계감사와 컨설팅을 분리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한 회계법인 고위 관계자는 "막다른 코너에 몰린 기분"이라고 말했다. 회계업계에서는 '투명성 확보'라는 대명제에는 동의하지만 회계사들이 마치 부실의 주범인 양 몰아가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변신을 꾀하는 회계사=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월급쟁이 회계사가 배상금액을 감당할 능력이 어디 있느냐"며 "개인 회계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까지 제기되다보니 업무스트레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감사보고서를 더욱 꼼꼼하게 작성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며 "앞으로 회계관련 규정이 강화되면 업무환경은 더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다른 회계사는 "기회만 되면 다른 분야로 진출하려는 회계사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회계감사의 경우 보수에 비해 일이 힘든 데다 리스크는 커져 컨설팅 부문으로 옮기려는 회계사가 많다는 것. 컨설팅회사뿐만 아니라 증권사 창업투자사 일반기업의 재무팀쪽으로 진출하려는 회계사도 많아지고 있다. 뜻이 맞는 회계사들끼리 독립해 소형회계법인을 차리는 사례도 줄을 잇고 있다. 대형법인에서 경력을 쌓은 회계사들이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을 상대로 한 컨설팅쪽에 특화하려는 시도가 많다는게 업계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질적 성장의 기회로 삼아=업계에서는 현 위기상황을 한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삼아야 한다는 견해도 제시되고 있다. 과거의 부실을 털어내고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과도기에 나타나는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업계의 노력여하에 따라 자본시장에서의 회계법인 위상을 높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영식 삼일회계법인 전무는 "회계감사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감사 투입시간을 늘리는게 불가피하다"면서 "이 경우 감사수임료를 현실화할 수 있기 때문에 질적 성장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