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4일 한국 축구의 새 장이 열렸다. 그 선봉에 벽안의 네덜란드인 거스 히딩크 감독이 있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에 0-5란 뼈아픈 패배를 안긴 '적장'이 그로부터 4년 뒤 월드컵 사상 첫 승이라는 위업을 한국팀에 선사했다. 1946년생인 히딩크는 무명 선수에서 명장으로 변신한 대표적 케이스. 지난 1967년 네덜란드 1부리그 그라프샤프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PSV에인트호벤을 거쳐 2년간(1976∼1977년) 미국축구 워싱턴 디플로메츠,새너제이 어스퀘이크 등에서 뛰었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진 못했다. 1977년 네덜란드로 돌아온 그는 NEC니메가를 거쳐 82년 그라프샤프에서의 활동을 끝으로 15년간의 무명 선수생활을 접었다. 그가 '명감독'으로서의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선수 생활을 마감한 그는 그라프샤프에서 4년간 코치생활을 했다. 에인트호벤팀(1986∼1990) 감독을 맡아 1986년 네덜란드 1부 리그 우승컵을 안으며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그에게도 슬럼프는 왔다. 1990년 터키 페네르바제를 거쳐 1991년 스페인 발렌시아 감독에 취임했지만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한 것. 그러나 1995년 네덜란드 대표팀 사령탑을 맡게 되면서 그는 다시 빛을 보게 된다. 1996년 유럽선수권에서 네덜란드를 8강으로 이끈 히딩크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팀을 4강에 진출시키며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렸다. 당시 그는 한국대표팀에 뼈아픈 패배를 안겨주며 차범근 감독을 중도 하차시켰다. 이후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1998∼2000) 감독으로 도요타컵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으나 레알 베티스에서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러던 지난해 1월 한국대표팀 감독에 전격 취임,시드니 올림픽과 아시안컵에서의 부진으로 나락에 떨어진 한국팀을 건져낸 '구세주'가 됐다. 하지만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해 5월 컨페더레이션스컵 프랑스전과 8월 체코전에서 잇따라 0-5로 참패를 당한 뒤 '오대영 감독'이라는 오명까지 쓰게 됐다. 그러나 지난달 스코틀랜드,잉글랜드,프랑스 등 세계 강호들과의 평가전에서 인상적인 경기를 펼치면서 히딩크에 대한 기대는 급상승했다. 히딩크는 여러모로 한국 축구의 체질을 개선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히딩크가 가장 역점을 둔 것은 집중적인 체력훈련. 그는 또 포메이션에 얽매이기보다 선수 개개인의 능력과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유동적인 축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며 소수의 스타플레이어에게 의존하기보다 탄탄한 팀워크를 통해 효율적으로 상대를 공략하는 전술을 개발했다. 그는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스피드와 공격-미드필드-수비의 간격을 최대한 줄인 '조밀한 축구(콤팩트 사커)'도 강조하고 있다. 이같은 히딩크의 전략과 전술이 마침내 한국의 첫 승을 일궈냈다. 김미리 기자 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