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풀스는 스포츠 스코어 알아맞히기 게임을 벌이는 로토 복권회사이다.월드컵 개최를 기회로 국민에게 '건전한 스포츠 오락'을 공급할 것이라며 정부가 허가해준 체육복표 사업자이다. 이 회사가 연출한 최근의 소동극을 보면 정부당국이나 사회지도층이 우리사회의 병리현상에 얼마나 마비돼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첫째,도대체 분별력이 없거나,그렇지 않으면 뻔뻔스러운 우리 정치계를 볼 수 있다. 타이거풀스는 무수한 관·정계의 인사들에게 돈을 뿌렸고,그 가운데에는 차기 대통령선거 출마자의 이름도 거론됐다. 로비의혹에 대해 이들은 하나같이 '대가(代價)성'이란 당치도 않다고 외쳐댄다. 그러나 돈을 준 자가 누구인가. 도박회사가 아닌가. 판돈도 없는 곳에 돈을 거는 도박사를 본적이 있는가. 둘째,도박산업의 해악성과 전염성에 대해 전혀 무감각한 당국과 사회지도층을 보여준다. 어떤 구실을 붙이든 복권업은 서민의 주머니 털기를 목적하는 사행(射倖)업이다. 이런 사업에 포스코 같은 국민적 대기업이 몰려오고,대통령의 아들들이 이권을 다투었다. 타이거풀스 주주명단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언론매체들 이름이 화려하게 도열해 있다. 타이거풀스 사건에 연루된 인사들의 부도덕한 면면은 마땅히 지탄대상이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들보다 더 위험한 것이 '무식하고 절제력 없는 권력기관'의 행태이다. 도박의 사회적 패악은 누구나 아는 바이니,공적 기관은 그 제재에 앞장서야 할 일이다. 그런데 정부와 신문방송이 오히려 사행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지도층의 의식이 이런 실정이니,앞으로 20년 뒤 우리 사회가 어떤 병든 모습을 보일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병폐는 돈을 버는데 분별이 없다는 점이다. 국가기관도 예외가 될 수 없어,선진국 정부일수록 도박사업 운영에 나서는 버릇이 강해지고 있다. 미국의 예를 보면 20여년전만 해도 도박이 허용된 곳은 네바다 뿐이었으나,오늘날 유타,테네시,하와이만이 이를 불허한다. 주정부가 운영하는 복권규모는 1999년 기준 4백억달러에 이르렀고,벌어들인 재정수입이 2백억달러 내외로 추정된다고 한다. 번창하는 사행산업은 주정부의 중요한 수입원이 됐지만,덕분에 5백만명의 인구가 치유불능의 도박중독자로 추락했다. 오늘날 남루한 유색인 노동자가 로토 판매소에서 그날의 일당을 몽땅 처박는 꼴은 남부,동부의 미국 어느 도시 구석에서나 목격할 수 있다. 우리는 아직 이 꼴은 아니다. 복권시장규모는 작년 기준 6천억원 정도로 아직은 '후진국'수준이다. 그러나 국가기관들이 앞다투어 복권발행을 시작했고,인터넷 복권시장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복권시장은 금년에만 두배 가까이 성장할 것이라고 한다. 작년 말에는 6개 중앙관청과 제주도가 결합해 '온라인 연합복권'을 발행키로 했는데,연 1조5천억∼2조원을 추산하는 이 사업에 끼지 못한 다른 기관들이 이의 부당성을 외쳐대는 가관을 연출했다. 불같은 국민적 도박 애호성에 이렇게 기름을 부어대는 정부행태를 보면,우리가 '도박 선진국'이 되는 것도 순식간의 일일 것이다. 복권은 보통 40% 정도를 당첨금으로 지급한다. 20%가 발행 및 판매비용으로 들어가며,고액당첨액에는 22%의 세금을 국가가 다시 떼어간다. 정부발행의 만원짜리 로토 한장에서 인쇄와 가판업자가 2천원,정부가 5천원 가량을 먹고,고작 3천원 정도가 구매자 몫으로 남는 것이다. 수십억 대박을 미끼로 물을 때마다 70%를 낚아가는 낚싯밥인 것이다. 이 낚싯밥을 무는 호구(sucker)는 가난하고 우매한 백성이다. 하늘에서 떨어질 돈벼락밖에 기대할 것이 없는 하층민이나 복권에 희망을 걸지,억대자산을 쌓는 중산층은 눈길도 주지 않는다. 99% 이 호구들은 낙첨하고 내일 또다시 하루벌이를 허망한 꿈에 거는 낙오자의 운명의 길을 걸을 것이다. 절박하고 어리석은 서민을 수탈하는 '악세'이고,사회를 타락시키는 '마약'이다. 선진국이 하는 짓이라고 모두 좇아갈 필요가 없다. 2003년 새 정부를 맡을 사람은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하는 이런 야바위꾼 행위를 반드시 폐지할 것임을 공약해야 한다. kimyb@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