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초점] "궁지에 몰린 미국 달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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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달러화가 궁지로 몰리고 있다.
최근 주요 통화에 대한 약세를 지속하고 있는 달러화는 국제 금융시장에서의 자금 이동을 부추기면서 추가 약세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 경기회복 지연에 대한 우려로 촉발된 달러화 약세는 경상수지 적자 확대, 추가 테러 가능성, 미국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 등의 악재가 겹쳐지고 있는 형국이다.
반면 일본 엔화는 일본경제의 바닥 탈출 인식 등의 강화로 연일 강세다. 다만 일본 외환당국의 직접 개입이 단행되면서 엔화 강세 속도를 다소 누그러뜨릴 기세다.
◆ 미국 달러화 '레퀴엠' = 달러화는 엔화에 대해 21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오후장 한때 123.49엔까지 하락, 지난해 12월 초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내려섰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개입 확인으로 124엔대 중반으로 반등한 뒤 거래되고 있다.
달러화는 유로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상황을 연출, 지난해 9.11 테러사태 직후의 0.92달러대에서 상승세를 타면서 0.9244달러까지 올라선 뒤 같은 시각 0.9215달러를 가리키고 있다.
지난해 테러충격에도 불구, 미국 경제지표의 호전으로 이내 강세를 회복했던 달러화는 지난 4월 하순이후 경기회복이 더뎌질 것이란 우려가 점증하면서 방향을 본격적으로 틀었다.
지난 1/4분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5.8%에 이르는 등 회복세가 뚜렷했으나 이는 재고감소폭 축소, 재정지출 확대 등 일시적 요인에 기인한 것으로 풀이됐다.
4월 실업률은 1994년 이후 최고치인 6.0%까지 치솟아 향후 소비증가 둔화와 경기 회복 확산에 대한 불신감을 심어줬다.
반면 4월중 소매판매액이 전달보다 1.2% 증가, 예상치(0.7%)는 물론 전달(0.1%)을 크게 웃돌아 경기회복세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희석시키기도 했다.
이같은 지표에 따라 들쑥날쑥하는 경기전망이 달러화에 대한 시장 신뢰의 악화를 가져왔다. 경기가 일시 상승했다 다시 하강국면에 떨어지는 더블딥(Double-dip)현상에 대한 논란이 커졌으며 미국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는 것.
특히 경상수지 적자 확대가 달러화에 치명타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GDP의 4%에 달한 경상수지 적자가 올해 5%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 임계치에 다다르면서 자본 이탈과 통화가치 하락을 예고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 2월 이후 뉴욕증시가 5∼10% 하락, 경기회복 기대감이 반영된 이후 조정이 뚜렷하다.
미국경제 펀더멘털에 비해 달러화가 고평가됐다는 인식이 국제금융시장에 퍼져 투자자들은 달러화를 매도할 핑계찾기에 여념이 없다. 이른바 달러화에 대한 레퀴엠(진혼곡)이 울려퍼지고 있는 셈.
LG투자증권 이덕청 이코노미스트는 "일본과 유럽 경기회복 지표 강화로 미국과의 성장률 격차가 축소됐다"며 "미국외 지역의 동시적인 경기회복과 이에 따른 미국으로의 자금유입 축소로 엔화, 유로화 등 비달러 통화가 중장기적인 가치회복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 조정이냐, 추가 하락 사이의 간극 = 달러화에 대한 악재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날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미국 의회가 정부의 부채상한 상향조정 요청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국가신용등급의 하향을 검토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조지 부시 대통령은 "추가 테러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 뉴욕 증시와 달러화의 약세를 부추겼다. 미국연방수사국(FBI)은 지난달 뉴욕 등 미국 동부지역 금융회사에 대한 테러공격 가능성을 예고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의 강한 달러 정책도 흔들리고 있다. 폴 오닐 재무부 장관이 최근 강한 달러에 대한 의지와 원칙을 강조했으나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아 신뢰성이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
케네스 댐 재무부 부장관도 현지시각 21일 "정부의 달러 강세정책에는 변화가 없다"며 "미국 경제의 회복세는 상당히 '강력한' 추세이나 일부에서의 기대만큼은 아니다"고 거듭 이를 확인했으나 시장의 불신이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음이 이날 확인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알카에다 집단의 추가 테러 가능성과 관련, 미국의 자금동결에 대비해 중동권에서 '달러매도-엔·유로 매수' 등도 달러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최근 미국 시장에 다녀온 한 섬유업체 관계자는 "미국 사람들이 테러에 대한 공포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일단 피하고 물건 사는 것도 꺼려하고 있다"며 "미국측 바이어의 구매상담이 크게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같은 요인에 의해 달러화 약세기조의 유지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다만 달러화의 급락 가능성은 낮고 미국 경기회복의 속도에 따라 단기적으로 상승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전영재 수석연구원은 "향후 달러의 변동폭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경기회복의 속도"라며 "경기회복을 보여주는 강력한 거시지표가 나타나면 달러화 가치는 반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미국 경상수지적자를 감안하면 강한 달러 정책을 지속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기업실적 부진 등에 따라 경기회복 속도가 둔화되고 미국 경제가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면 달러화는 예상보다 빠르게 하락할 위험도 안고 있다"고 덧붙였다.
◆ 일본 엔화 '부활', 당국 개입 관건 = 일본경제의 바닥 탈출 인식의 확산이 엔 강세를 유도하고 있다. 경상수지 흑자 증가와 산업 생산 호전 등과 함께 다음달 7일 발표되는 일본의 1/4분기 GDP가 4분기만에 플러스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민간경제연구소의 자료를 인용, 지난 1/4분기 일본 국내총생산(GDP)이 2.2%(연율 9%)에 달해 4분기만에 플러스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BOJ)은 수출과 산업생산 증가로 이달 경기판단을 상향, 경기침체로의 탈출이 가속화되면서 3개월째 경기판단 상향세를 이었다.
보스턴에 있는 인베스터스 뱅크 인 트러스트의 팀 마자넥 수석 통화전략가는 "펀드매니저들이 자금을 일본으로 밀어넣고 있다"며 최근 일본으로 몰리는 자금 흐름을 전했다. 미국의 더블딥 가능성과 맞물려 일본의 회생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
그러나 달러/엔 환율이 120엔 밑으로 떨어지는 것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일본 경제의 펀더멘털이 일방적인 엔 강세를 유도할만한 강하지 않고 이날도 일본 시오카와 재무상이 외환당국의 직접 시장개입을 확인했듯, 수출 차질에 따른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기 때문에 엔 강세에 대해 거부감이 강한 상태다.
이와 관련 케네스 랜던 도이치뱅크 외환전략가는 "일본 정부의 시장개입이 꽤 성공적이었으며 공격적인 시장 개입이 달러약세 기조를 바꿀 수도 있다"며 "그러나 명확한 변화는 감지되지 않고 있으며 향후 3일 정도 BOJ가 어떻게 나올 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이준수기자 jslyd0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