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그의 손끝에선 불길이 솟는다. 그의 몸을 '툭'건드리기만 해도 주위 어디선가 하얀 비둘기가 날아오를 것만 같다. 감각의 촉수를 곤두세운 관객들과 벌어지는 1초간의 짧은 승부. 승리는 언제나 그의 몫이다. 단조로운 삶에 지친 소시민이라면 꿈꿔보는 작은 기적. 어렸을 적 누구나 한번쯤 동경했을 법한 마법세계로의 초대장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장난끼 가득한 앳된 얼굴을 한 신세대 마술사 최현우씨(23·한국외대 경제학과 4년). 마술기획사 비즈매직에 속해 있는 스타급 프로 마술사다. 이달 초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국제마술대회 'IBM Ring 85 Convention-Dublin 2002'에서 대상인 그랑프리를 포함해 3관왕을 차지하며 세계적인 마술사 반열에 한발짝 다가섰다. "속임수라고요? 절대 아닙니다. 마술은 잃어버린 꿈을 되찾아주고 세상에 생기를 불어넣는 종합예술입니다." 그의 몸 전체는 언제나 '진행형'이다. 손가락을 한번 퉁기는가 싶더니 어느새 1백원짜리 동전은 손거울만한 크기의 은화로 바뀐다. 관객의 시선과 고정관념을 이용하는 것. 모든 마술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단다. 그뿐이다. 마술의 비밀에 대해선 더이상 밝히지 않는다. 비둘기를 어디에 숨기고 다니느냐는 우문에 "비둘기는 어디에든 있다"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다. "마술사끼리도 서로의 기술에 대해 묻지 않는게 이 세계의 불문율입니다. 마술은 환상에 가까운 현실일 뿐입니다. 꾸준한 교육과 연습만 하면 누구나 비둘기를 불러올 수 있죠."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이 기이한 직업세계에 그는 어떻게 발을 들여놓았을까. 지난 97년말 수능시험을 치른 후 영화를 보기위해 들른 영화관 지하의 매직숍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마치 해리포터가 마술학교에 입학하며 자신의 숨겨진 능력을 깨닫듯 그는 그렇게 마술세계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매직숍 주인의 간단한 마술을 본 순간 제 몸 저 밑에서부터 뭔가 '울렁울렁'거리더라고요. 인터넷과 마술 고수를 찾아다니며 '내공'을 닦았죠. 정말 먹고 자는 시간 빼곤 언제나 거울 앞에서 마술 연습을 했어요." 대학에 입학해서도 학교는 언제나 마술 다음이었다. 침대나 장롱 밑에는 부모님 몰래 하나씩 모은 마술도구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렇게 5년동안 '마술'처럼 부모님을 속였어요. 엄하신 아버지 눈에는 마술사가 그저 그런 '딴따라'로 보였을테니까요. 하지만 이젠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되셨어요." 카드마술 세계 챔피언인 레나트 그린으로부터 '국제 마술계가 가장 주목해야 할 젊은 영웅'이라는 극찬을 받은 그는 이제 세계마술대회에 게스트로 초대될 만큼 유명인사가 됐다. "데이비드 커퍼필드가 자유의 여신상을 없앤 것과 제가 컵 안의 공을 없애는 것은 다 같은 원리입니다. 서울시만이 허락한다면 63빌딩 정도야…."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겠다는 질문에 그냥 '씩'웃어버리는 그는 우리의 잃어버린 꿈을 찾아주기 위해 오늘도 화려한 조명이 비치는 무대에 오른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