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탈교를 건너자니 지리산에서 흘러내리는 냇물소리가 시원스럽다. 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국사가 개창한 국내 최초의 선종가람 실상사.구산선문(九山禪門)의 첫번째 가람이자 근년에 들어서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삶을 실현하는 대안운동의 근거지로 주목받는 곳이다. 불기 2546년 '부처님 오신 날'(19일)을 앞두고 지난 13일 실상사에서 주지 도법 스님(道法·53)을 만나 부처님이 오신 참뜻과 그 가르침을 어떻게 되살려야 할지 들어봤다. 지난 65년 금산사로 출가한 도법 스님은 불교계 안팎의 신망이 두터운 중진이다. 강원을 거쳐 15년여 동안 선방에서 정진했고 지난 93년 실상사에 온 뒤로는 연기법에 입각한 대안적 삶의 방식을 여러가지로 실험중이다. 또 94년과 98년 조계종이 내홍에 휩싸였을 땐 급거 하산해 '불'을 끈 뒤 지체 없이 산으로 돌아가는 '무욕(無慾)'의 전범을 보이기도 했다. "부처님은 삶의 문제를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며 과학적으로 다룬 분입니다. 진리는 항상 늘 '지금,여기'에 있으니 눈 있는 자는 와서 보라고 했지요. 매순간 자기가 직면한 현실에 진리가 있으니 직접 와서 보면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태도를 가진다면 삶이 훨씬 풍요롭고 여유롭고 자유롭고 편해질 겁니다." 자기의 실상에 대해 모르는 것,즉 무지·무명(無知·無明)이 모든 문제의 일차적 원인이므로 자기가 직면한 현실을 제대로 봐야 한다는 말이다. "연기법의 진리를 모른 채 자기 중심의 이기적 사고와 맹목적 탐욕에 이끌리니까 소유와 독점 지배의 논리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태양이 없다면,달과 별 흙과 물 이웃이 없다면,내가 존재할 수 있습니까.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있게 하는 고마운 존재들입니다. 그러니 세상에는 '나' 아닌 것이 없고 또한 '나'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무아(無我)입니다." 도법 스님은 또 불교의 '중도(中道)'란 '있는 그대로의 길,사실의 길'이라고 풀이한다. 지금 있는 그대로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한다는 뜻이다. 깨달음과 실천의 병행을 주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실천은 깨달은 후에 하는 것이라는 선 수행자들의 잘못된 인식이 온 우주를 넘나드는 웅혼한 선의 정신을 선방이라는 '좁은 틀'에 가둬놓고 있어요. 불교가 관념화되고 현실을 도외시하게 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수행도 현실적이고 직접적이며 과학적이어야지요." 도법 스님은 그래서 불교를 불교답게 세우고 수행자는 수행자답게 사람은 사람답게 살도록 하자고 주장한다. 실상사에 2년제 교육과정인 화엄학림을 세우고 연구·수행·실천의 균형과 조화를 위한 방안을 연구하는 화림원을 만든 것은 불교를 제대로 세우기 위한 노력이다. 연기법의 사상과 정신에 입각한 사부대중(비구 비구니 남녀신도) 공동체를 추구하는 것도 불교적 삶의 실천을 위해서다. 내년부터 스님들은 수행과 교화에만 전념하고 절의 운영과 관리는 신도들이 맡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또 유기농 농장공동체,실상사 작은학교 공동체,농촌 살리기를 위한 귀농학교 공동체를 운영하는 외에 실상사 앞 마을에 문화회관을 세우고 의료생활협동조합 명상센터 등을 만들 계획도 가지고 있다. "생명의 위기와 공동체의 와해,비인간화가 현대 사회의 3대 문제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하고 내가 편하기 위해 남을 파괴해야 하는 현대 사회의 구조와 삶의 방식으로는 인간답게 살 수 없어요. 예컨대 미국의 부유함은 빈곤한 나라의 상처요 강자의 행복은 약자의 고통이기 때문이지요. 과정 자체에서 상처와 파괴가 없는 삶을 찾아야 합니다." 도법 스님은 깨달음과 지족(知足) 달관과 청빈을 그런 삶의 자세로 제시했다. 있는 사실을 제대로 보는 것이 깨달음과 달관이요 가능한 한 적게 쓰면서 선택한 가난이 지족과 청빈이다. 도법 스님은 "우리 조상들은 이런 삶을 아름답고 멋진 삶으로 여겼다"면서 "자본과 기계,돈에 종속된 삶에서 벗어나 연기법에 입각해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상사(남원)=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