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 이사회에서 매각협상안이 부결됨에 따라 하이닉스의 미래는 다시 미궁으로 빠져들게 됐다. 하이닉스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포함해 독자생존의 길을 걸을 수 있을지, 아니면 채권단의 방관속에 파산 등의 '막다른 길'로 접어들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조건을 바꿔 매각협상이 다시 추진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와 채권단이 부채탕감을 포함한 채무재조정 등에 협조해줄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한국 정부의 강력한 매각의지를 이용해 과도한 요구를 내세우는 등 헐값인수를 추진하던 마이크론의 시도는 좌절됐다. 이로써 마이크론 하이닉스 인피니언 등 D램 업계의 2위 그룹 기업들간 합종연횡 시도가 모두 원점으로 돌아간 만큼 이들간 경쟁이 다시 격화될 전망이다. ◆왜 부결됐나=하이닉스 이사회가 이날 협상안을 부결한 것은 채권단이 작성한 잔존법인 생존방안의 실현가능성이 낮다는 점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실적과 마이크론 주가는 낙관적으로 예상한 반면 우발채무위험은 축소평가돼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매출액 7천억~8천억원짜리 회사에 부채를 3조원이나 남겨놓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이사진이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잔존회사의 부채부담능력보다 2조5천억원 가량 과다계상됐다는 하이닉스 경영진의 지적을 이사들이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론측도 채권단이 제시한 잔존법인의 회생방안에 대해선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하면서 이사회를 통과하기 힘들 것이란 의견을 채권단 및 하이닉스측에 보냈던 것으로 전해졌다. ◆매각 재추진 가능성=정부와 채권단으로서는 하이닉스 매각작업을 다시 추진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연수 외환은행장은 "추후 재협상 여부는 마이크론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권오규 재정경제부 차관보도 "성공 가능성은 떨어지지만 재매각을 추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재매각론에 무게를 실었다. 마이크론측 대변인도 이날 매각안이 부결된 후 "하이닉스와의 협상이 결렬됐다고 즉각적으로 말할 순 없다"고 밝혀 여운을 남겼다. 다만 현재로서는 마이크론 외의 기업을 대상으로 매각협상이 재추진될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그동안 협상을 하다가 결렬된 마이크론과 인피니언 외에 인수의사나 자금력을 가진 기업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법정관리.청산 가능성=채권단의 신규 자금지원이 끊겨 하이닉스의 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경우 표면화될 수 있는 사안이다. 한빛은행 관계자는 "신규자금 지원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회사채나 어음이 만기연장되지 않으면 하이닉스는 부도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하이닉스는 자체 영업에서 벌어들인 자금으로 원리금 상환 등에 충당하고 있는 상태다. 이미 부채만기를 상당부분 2004년 이후로 미뤄놓은 덕분에 당분간은 버틸 수 있다는 게 회사측 이야기다. 지난 1.4분기엔 당초 5천억원의 유동성부족이 발생해 유상증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D램 가격이 올라 자체적으로 원리금을 갚았었다. 그러나 D램 값이 급락할 경우엔 법정관리 등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 ◆독자생존 가능할까=하이닉스반도체가 독자생존에 성공하기 위한 절대 조건은 물론 D램 가격의 안정이다. 하이닉스가 내놓은 '독자생존 보고서'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올해와 내년 D램 평균가격(1백28메가 환산기준)이 4달러를 유지하면 독자생존이 가능하다. 이 경우 올해 △매출 5조8천억원 △투자 1조3천억원 △차입금 상환 8천4백억원 등을 기록해 세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 1조원 이상의 현금축적도 가능하다. 신규 자금지원없이 12인치 웨이퍼 팹(반도체 일관생산라인)에 대한 투자도 할 수 있다. 회사측은 또 D램 평균가격이 3.3달러 수준으로 떨어지면 2조원 규모의 부채탕감(또는 출자전환)이 있으면 독자생존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나머지 소요자금은 12인치 생산라인 투자의 재조정과 비메모리 사업부문의 분리 및 외자유치(2억~5억달러) 등을 통해 2조7천억원의 새로운 현금을 마련해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1.4분기 D램 평균가격은 1백28메가 환산기준으로 전분기보다 2배 이상 높은 4.28달러.지난 4월 들어선 4.8달러대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가파르게 값이 떨어지고 있는 점이 변수다. 김성택.이심기 기자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