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하구 신평동에 있는 한국선재(韓國線材)는 철선을 원재료로 다양한 제품을 만든다. 국내 최고수준의 기술을 지닌 세계적인 기업으로 국내보다 일본에서 더 유명하다. 이 회사가 생산하는 고품질의 스테인리스강선과 아연도금철선,철못 등은 일본에서 건설용 자재, 도요타자동차의 에어백용 철선,전자부품의 특수선,스태이플의 재료 등으로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제품의 진가가 일본에서 발휘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일본의 연간 아연도금 철선 수입물량(3만톤)의 43%가 한국선재 제품이었다. 대일본 수출물량의 70%를 차지하는 수치다. 이처럼 한국선재가 바이어로부터 신뢰를 얻게 된 것은 이명호 사장(69)의 끊임없는 일본시장 공략 노력 덕택이다. 올들어 월 1회가량으로 줄어들긴 했지만 지난해만해도 1년중 3개월을 일본에서 활동했다. 철망공장 곳곳을 누비며 판매한 제품의 문제점을 파악한뒤 즉시 고치는등 철저한 애프터서비스를 제공했다. 한국선재에 있어 납기는 생명과 같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어긴 적이 없었다는 것이 회사측 설명이다. 제품 자체의 뛰어난 경쟁력은 회사의 성가를 높인 다른 요인. 이 회사는 주력 제품으로 선경 0.1~0.5mm까지의 아주 가는 철선을 튼튼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업이다. 특히 고부가가치제품인 0.16mm 이하의 스테인리스선이 들어가는 자동차 에어백용선도 만들어낼 수 있는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좋은 제품이라는 소문이 세계시장에 퍼지면서 미국과 동남아시아 유럽 등에서의 수출 오더가 늘어나고 있다. 이 사장이 "한국선재 제품은 타사 제품보다 톤당 5만원정도 더 비싸도 외국회사들이 즐겨찾는 제품이 됐다"며 자랑하고 있다. 이 덕택에 한국선재의 지난해 경영성적은 매출 7백80억원에 당기순이익 27억원을 기록했다. 수출은 2백61억원으로 매출의 33%를 차지할 정도로 수출주력기업으로 탈바꿈했다. 한국선재는 지난 2년간 1백50억원을 투입,시설 투자와 공장 확장 등을 마무리했다. 공정 개선을 통해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면서 부채비율이 90년말 2백50%수준에서 지난해 60%로 대폭 낮아졌다. 올해는 건설경기 호전 등으로 매출 9백10억원에 당기순이익이 50억원을 무난히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 수출 비중도 전체 매출의 35%이상으로 높일 계획이다. 수익이 나면 반드시 직원들에게 베푼다는 것이 한국선재의 철칙. 지난해 특별상여금으로 50%의 성과급을 지급했고 명절에는 직원들에게 선물을 제공하고 있다. 이 사장은 "5년전에 일시적인 경영난을 겪을때 직원들이 자진해서 임금과 상여금을 삭감하고 하루 한시간 회사돕기 무급근무제를 실시했다"며 "이같은 주인의식을 가진 직원들에게 버는 만큼 몫을 돌려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선재는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의 신평장림공단의 본사 공장과 학장,경남 밀양 등 3곳의 공장외에 오는 5월 녹산공단 4천평에 물류창고를 준공한다. 상품들을 이곳에 보관, 관리하면서 20%이상의 물류비가 절감할 계획이다. 한국선재가 설립된 것은 지난 74년 7월. 대선양조 전무이사로 근무하던 이 사장은 앞으로 건축경기가 활성화되면서 철강2차제품이 전망이 밝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아연도금철선과 철못을 비롯 건축자재를 생산하는 업체로 출발,75~78년까지 3차례에 걸쳐 공장을 확장했다. 78년에는 수출입인허가업체로 지정받는 등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왔다. 90년대 들어 원자재가격의 상승과 내수시장의 침체,채산성 악화 등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회사가 어려움에 직면했다. 이로인해 일본 수출 물량으로 회사를 유지해오다가 98,99년에 홍수가 발생하면서 사정이 호전됐다. 홍수를 막기위한 돌망태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주력 제품인 아연도금철선이 날개 돋친듯 팔렸기 때문이다. 이 덕택에 성장의 기반이 마련됐다. 다른 회사들이 잇따라 넘어졌던 외환위기때 한국선재는 오히려 달려나갔다. 지난 95년 일본 시장 겨냥을 위해 일본공업규격(JIS) 표시허가 취득 등 치밀한 준비를 수년동안 해온 덕분이었다. 이 허가는 기업의 기술력이 전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최고수준이라는 것을 인정받을 수 있는 표시다. 줄어드는 내수를 그동안 닦아온 일본과 미국 시장에서의 신뢰를 바탕으로 수출을 확대하면서 메워나갈수 있었다. 이로 인해 지난 97년 1백33억원에 그쳤던 수출이 지난 98년 2백74억,99년 2백82억원으로 매년 늘어났다. 이 사장은 "국내시장이 어려울 때에 대비하고 상품의 국제경쟁력을 갖추려면 내수와 수출시장을 공유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철저한 신용과 끊임없는 제품개발없이는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며 "앞으로 고부가가치분야인 아연도금철선과 스테인리스강선을 집중적으로 개발해 세계 최고의 선재?생산전문업체로 도약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