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 때쯤이면 전세계 과학계의 눈길은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연례회의로 쏠린다. 무엇보다 미국 과학기술정책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조류 변화를 예고하기 때문이다. 지난 11-12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제27차 AAAS 연례회의도 마찬가지다. 이번 회의에서는 부시행정부의 연구개발정책 우선순위는 보다 분명히 드러났다. 부시행정부의 정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미사일과 바이오메디컬'이다. 다른 부문은 상대적으로 정체내지 하락하는데 비해 바이오와 국방연구예산의 증가가 눈부시다. AAAS가 분석한 내년도 미 행정부의 예산제안서를 보면 바이오 연구의 본산지인 국립보건연구원(NIH) 예산규모는 2백65억달러다. 다른 어떤 부문보다 가장 높은 전년대비 16%의 증가율이다. 이에 따라 비(非)국방부문 연구예산에서 바이오의 비중이 50%를 차지하게 됐다. 98년부터 향후 5년간 바이오예산을 배증한다는 계획의 달성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바이오 테러리즘 대응요구도 큰 몫을 했다. 다음으로는 국방부문의 연구예산이다. 부시행정부는 내년도에도 9.9% 예산증액을 요구했다. 국방부문 연구예산 증가는 사실 예고돼 왔던 터다. 9.11 테러 여파로 금년도 정부 전체 연구개발 예산은 이미 1천억달러를 넘어서는 기록을 낳았다. 이중 50%가 넘는 국방연구예산의 지속적 증가에는 테러여파로 힘을 얻게 된 미사일 방어체제 연구예산 증액이 큰 기여를 했다. 이와 관련하여 국방과 바이오에 대한 예산의 불균형적 배분이 미국의 장기적인 경제성장에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도 물론 제기됐다. 하지만 적어도 부시행정부하에서 이 기조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테러전쟁과 관련한 과학기술의 역할도 큰 주제로 다뤄졌다. 기회와 위협이라는 동전의 양면이 동시에 부각됐다. 기회적 측면과 관련해서는 정책적 수요에 대한 과학기술의 대응이 강조됐다. 또 시스템을 혁신하고 보안 등 그동안 관심이 적었던 사각지대에 대한 투자증대가 거론됐다. 그러나 9.11 테러로 데이터에 대한 접근성 제한이라든지 외국 학생이나 연구자들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면 전통적인 미국의 과학기술시스템과 대학이 새로운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어떤 연구를 허용하고 어떤 연구를 금지해야 하는가도 관심거리였다. 인간복제 연구와 생화학무기 연구 등이 그 대상이다. 인간복제와 관련해서는 법적 금지론자와 제한적 찬성론자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런 가운데 특히 정치인,일반 국민,그리고 과학기술 전문가들간의 인식의 차이가 부각됐고 이를 해소하는 것이 큰 과제로 드러났다. 전체적으로 미국밖에서는 잊혀져가는 9.11 테러가 미국의 과학기술은 물론 경제시스템의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현실 논설위원·전문위원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