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의 한국문학은 다방문학이라는 규정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온 문인들은 다방에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 있는 풍경을 인습적으로 연출해냈다. 반실업의 문인들은 문예살롱.대성.갈채.모나리자.동방살롱.돌체.청동.에덴.봉선화.마돈나.남강.미네르바.오아시스.고향.코롬방.라쁠륨.올림피아 등의 다방을 연고에 따라 몰려다녔다. 그곳에서 원고 청탁과 수교,소모적인 문단 논쟁,풍문 속의 문단 연애,싸움질이 이루어졌다. 한국은 오랜 식민지 지배와 거기에 잇따른 3년간의 유혈 전쟁을 치르느라 자원이 거덜나버린 세계 최하의 극빈 국가 중 하나로 전락한 채 외국의 구호물자에 의지해 겨우겨우 연명하는 상황이었다. 문인들은 그 변방 후진국의 암울한 지식인,혹은 가난한 예술가에 지나지 않았다. 환도 이후 다방 문단사가 펼쳐지는 이 즈음 김관식이 당대 추남의 얼굴을 당당하게 들이밀며 이 다방 저 다방에 출몰하기 시작한다. 논산에서 태어나 호남 명문 중의 하나인 강경상고(江景商高)를 졸업하고,서울에 올라와 한학의 대가들인 정인보(鄭寅普) 오세창(吳世昌) 최남선(崔南善) 등의 문하에서 한학을 수학하며 주역(周易),반야심경(般若心經),동의보감(東醫寶鑑),당시(唐詩)를 꿰뚫은 그는 추남에다가 도저한 자만심으로 무장을 하고 전후 문단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김관식은 동양 고전들을 두루 통달한 박학다식과 그에서 비롯된 대가의식으로 꽉 차 이미 문단의 대가로 군림하던 김동리,조연현,박목월 등을 감히 김군,조군,박군이라고 호칭하며 좌충우돌 나아가는 국외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의 눈에 비친 당대 문인들은 왜소하게 규격화된 재능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시속(時俗)의 잡배(雜輩) 수준이었다. 그가 '몇몇 심우(心友)와 선배를 쬐끔씩만 믿었을 뿐' 나머지 다방에 죽치고 앉아 있는 문인들을 우습게 여겼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술에 취해 나타나 눈자위 사납게 흰 창을 흘기며 공연히 문인들을 향해 난데없는 욕설과 함께 일갈하거나 초청하지도 않은 화기애애한 출판기념회에 나타나 판을 엎어버리기 일쑤였다. 그야말로 안하무인이었던 그때 김관식은 불과 20대를 넘긴 지 몇 해 되지 않은 나이였다. 그의 말년의 생은 시 '병상록(病床錄)'에 나타난 것처럼 깡소주와 생활고와 병고에 꺾이고 만다. 그의 간,심,비,폐,신 등 오장이 깡소주에 녹아버리고 만 것이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벌써 죽음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 역시 죽음을 앞두고는 아내와 철없는 어린것들의 앞날을 걱정하는 지아비였다. 하지만 그는 이내 죽음 앞에서조차 당당했다. '나의 임종(臨終)은 자정에 오라!'라고 큰소리쳤다. 임종을 '가장 소중한 손님을 맞이하듯 너를 위해 즐겨 마중하고 있으마'라고 했다. 죽음 뒤에 남을 아내와 어린것들에게는 '그동안 신세 끼쳤던 여숙(旅宿)을 떠나 영원한 본택(本宅)으로 돌아가는 길'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당부를 남겼다. 시인 김관식은 1970년 8월 30일에 세상을 버렸다. 그의 나이 불과 36세였다. 그와 동서지간이었던 미당은 김관식이 죽은 뒤 그의 때이른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세상의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고 욕만 퍼부으며 철저한 자존과 고독과 깡소주로만 살다가 완전히 폐가 녹아 사십도 못되어 스러져간 젊은 사내-신동출신(神童出身)의 김관식이를 시인으로 추천한 것을 나는 한동안 후회했으나,이제는 후회 안해도 되는가? 또다시 우리를 괴롭게 울리며 죽어갈 염려는 없어졌으니까…' < 시인·문학평론가 > .............................................................. 병상록 - 김관식 병명도 모르는 채 시름시름 앓으며 몸져 누운 지 이제 10년. 고속도로는 뚫려도 내가 살길은 없는 것이냐. 간(肝),심(心),비(脾),폐(肺),신(腎)... 오장이 어디 한 군데 성한 데 없이 생물학 교실의 골격표본처럼 뼈만 앙상한 이 극한상황에서... 어두운 밤 턴넬을 지내는 디이젤의 엔진 소리 나는 또 숨이 가쁘다 열이 오른다 기침이 난다. 머리맡을 뒤져도 물 한 모금 없다. 하는 수 없이 일어나 등잔에 불을 붙인다. 방안 하나 가득 찬 철모르는 어린것들. 제멋대로 그저 아무렇게나 가로세로 드러누워 고단한 숨결은 한창 얼크러졌는데 문득 둘째의 등록금과 발가락 나온 운동화가 어른거린다. 내가 막상 가는 날은 너희는 누구에게 손을 벌리랴. 가여운 내 아들딸들아, 가난함에 행여 주눅들지 말라. 사람은 우환(憂患)에서 살고 안락(安樂)에서 죽는 것, 백금 도가니에 넣어 단련할수록 훌륭한 보검이 된다. 아하,새벽은 아직 멀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