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페르소나'(분신) 조재현(37)이 김 감독과 함께 제52회 베를린영화제의 주상영관인 베를리날레 팔라스트의 붉은 카펫을 밟았다. 경쟁부문 초청작 「나쁜 남자」가 15일 첫 시사회 전부터 현지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이 영화의 타이틀롤을 맡은 조재현은 영화제 공식 프로그램에서 남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김기덕 감독님의 영화에 꾸준히 출연하다보니 이런 날이 오네요. 흥행도 잘 돼기분이 좋고 이처럼 유명한 영화제에도 참석하게 되니 뿌듯합니다. 그런데 심사위원절반이 여성인데다가 위원장도 여자분이라면서요? 수상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게 속편하겠네요." 「나쁜 남자」에서 조재현이 맡은 역할은 길거리에서 한눈에 반한 여대생을 창녀로 만든 뒤 파멸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창녀촌의 깡패 두목. 외마디의 대사와 이글거리는 눈빛만으로 화면 가득히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명연기를 펼쳤다. 조재현은 김 감독의 데뷔작 「악어」에서부터 「나쁜 남자」에 이르기까지 7편 가운데 5편에 출연했다. 나머지 두편도 출연할 뻔하다가 말았다. "감독님에게 처음 출연 제의를 받았던 것은 MBC 카메라맨이던 형님이 「제4공화국」을 촬영하다가 사고로 돌아가셨을 때였습니다. KBS 대하사극 「찬란한 여명」에출연하던 저는 연기에 염증을 느껴 전업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었는데 시나리오를 보니 제 연기생활의 전기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뒤로 흥행에서는 재미는 못봤지만 할 때마다 새롭고 연기하기도 편해 계속하게 됐습니다." 김기덕 감독은 조재현과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많지만 정작 그에게 연기를 시켜본 적이 없다고 한다. 얼마나 등장인물에 젖어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나마 「나쁜 남자」의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의 감정변화에 반응하는 역할이어서 쉬웠어요. 대사가 한마디밖에 없다는 것은 나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을 단지 입밖으로 내뱉지 않았을 뿐이어서 따로말없는 연기를 준비하지는 않았지요." "배우로서 이미지가 손상될까봐 주저하지 않았느냐"는 한 외국기자의 질문에 그는 "하도 악독한 역할을 많이 맡아 더이상 나빠질 이미지가 없으므로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고 대답해 폭소를 자아냈다. 그는 비전향장기수의 삶을 그릴 영화 「선택」(감독 홍기선)의 주인공으로 지난해 6월 발탁돼 세 차례의 촬영을 마쳤으나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대신에 무협액션물「청풍명월」(감독 김의석)의 4월 크랭크인을 앞두고 승마와 검술 연마에 돌입했다. (베를린=연합뉴스) 이희용기자 heey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