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최근 현지인이아프리카와 아시아 출신 유색인들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이른바 `백색 테러'가기승을 부리고 있다. 8일 모스크바 경찰과 주요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아프리카 케냐 출신의 한 20대여성은 7일 오후 모스크바 중심가에서 스킨헤드족으로 보이는 청년 5-6명에게 뭇매를 맞았다. 러시아 주재 케냐 대사관 고위 외교관의 가족인 이 여성은 혼자 시내를 산책하던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2일 오후에는 역시 케냐 대사관의 3등 서기관 사이몬 코이마가 모스크바남부 도브리닌스카야 전철역 앞을 지나던 중 젊은이 20여 명으로부터 집단 구타를당했다. 머리와 목 등을 심하게 맞은 코이마는 30여 분 뒤 출동한 경찰과 함께 경찰서로가 피해자 조서를 작성하던 중 직원들로부터 "스니커스(짙은 갈색의 초콜릿 과자)가또 왔다"는 경멸적인 말을 들어야 했다. 스니커스는 흑인의 피부색을 과자 색깔에빗대어 조롱하는 말이다. 머리를 짧게 깎은 가해자들은 검은색 가죽점퍼에 독일 나치 문양의 완장을 두르고 있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또 지난 달에는 앙골라 출신 20대 남자 유학생이 모스크바 남부의 한 슈퍼마켓에서 스킨헤드들로부터 맞아 팔이 부러지는 등 2000년 5월 이후 현지인들에 폭력을당한 아프리카.아시아계 거주인이 104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4명은 목숨을 잃었다. 특히 폭력 피해자들 중에는 10살 미만의 어린이도 포함돼 있어 백색 테러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그러나 폭력을 직접 단속하거나 사전 예방해야 할 정부 당국에서는 이같은 피해를 관할이 아니라는 등의 이유로 다른 부서로 떠넘기는 등 책임을 회피, 비난받고있다. 실제 지난달 23일 이고리 이바노프 외무장관을 만나 항의하기 위해 외무부를 찾았던 케냐 등 아프리카 7개국 대사들은 장관이 바쁘다는 이유로 면담 조차 거부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바노프 장관 대신 면담에 응한 알렉산드르 살타노프 외무차관도 대사들에게 "폭력 문제는 경찰 소관이니 내무부에 호소하라"고 말한 것으로 언론에 보도돼 물의를 빚고 있다. 전문가들은 모스크바에서 이처럼 백색 테러가 성행하는 이유는 경찰 등 관계 부처에 스킨헤드족의 입장에 동조하는 직원이 많고 일반 시민들 사이에도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 감정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국인에 대한 폭력 근절을 위해 러시아 정부가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하는 한편 외국인들도 불필요한 외출을 자제하는 등 주위를 기울여줄 것을 이들은권고하고 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이봉준 특파원 joon@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