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만큼 행복한 공무원도 그리 흔치 않을 것입니다.대과없이 공직생활을 끝낸 것이 그렇습니다.물론 아쉬운 점이 없을 수 없지만 보람을 안고 떠나게 돼 기쁩니다" 37년간의 공직생활을 사실상 마감한 김재종 전 서울시상수도사업본부장(60). 김 전 본부장은 서울시 공무원 중 최초로 현직에서 정년을 맞은 1급 공무원이다. 더욱이 최말단인 서기보(9급)로 시작해 직업 공무원의 최고자리인 관리관(1급)까지 올라간 역정과 국민의 정부 들어 처음으로 현직에서 정년을 마치는 1급이라는 점이 눈길을 모은다. 굳이 ''사실상''을 강조한 것은 김 전 본부장의 정년 퇴임은 오는 6월 말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현업에서 손을 놓고 공로연수에 들어가 있는 상태. 그는 1965년 서울시 9급(당시 5급 을류 행정직) 시험을 거쳐 공직사회에 발을 들여놓았다. 지난 68년 내무국 법무담당관실로 발령받은 후 ''서울시 자치법규집''을 6개월 만에 만들어 내는 등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창안한 사람을 기억하고 있는 이는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바로 김 전 본부장이다. 아파트 쓰레기 투입구를 폐쇄하고 컨테이너 박스로 교체해 시민과 함께하는 청소행정을 정착시킨 그 ''작품''의 창안자가 그였다. 서울시의 한 후배 공무원은 "그는 개인적으로나 업무적으로 서울시가 배출한 걸출한 스타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확한 판단과 지휘통솔력,친화력 등을 두루 갖춰 가는 곳마다 쇄신의 돌풍을 일으킨 주인공으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건복지국장 시절에는 서울시 행정 성공사례로 노숙자 종합대책이 미국 CNN에 보도되기도 했다. 공직생활의 신조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돈을 받지 말아야죠.그리고 정책 결정은 반드시 시민 편에서 하는 것입니다.그래서 공복(公僕)이라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최근에는 개인소장 미술품 등 1백점을 4월 개관 예정인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김 전 본부장은 "기증 미술품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과 지난 70년대 초부터 90년대까지 직접 수집한 것들"이라며 "대과없이 공직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 서울시와 시민들에게 나름대로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 기증하게 됐다"고 말했다. "공무원이요,의지와 소신 그리고 건전한 양식만 있으면 이렇듯 보람있는 직업도 없다고 확신합니다" 아주 쉬운 이야기이지만 공직자들이 진정 되새겨야 할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덧붙였다. 장욱진 기자 sorina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