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AIG컨소시엄과 현투증권 매각협상이 결국 불발로 끝났다. 끊임없이 제기되는 AIG측의 무리한 요구도 문제였지만 우리 정부도 제대로 된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지난해 8월23일 ''IMF 지원체제 조기졸업'' 축하를 위해 무리하게 매각 양해각서(MOU)발표를 서둘렀다는 비판을 받았던 당국자들은 스스로 협상진행 경과에 대해 ''중대한 착각''을 했거나 협상의 실상을 알고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새해 들어서도 진념 부총리나 이근영 금감위원장은 "협상이 조기에 잘 타결될 것으로 본다"며 계속해 희망가를 불러왔다. 어떻든 현대증권 매각이 좌절됨으로써 남은 부실기업들의 처리에도 자칫 악영향이 우려된다. 대우자동차 서울은행 대한생명 한보철강 하이닉스반도체 등 처리되지 않은 부실 대기업은 5개나 더 있다. 정부는 "AIG와의 협상이 국익에 맞지 않았다"며 국익론을 내세웠으나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이었다는 지적도 없지않다. ◇ 2년 매각협상의 실패원인 =매각협상 2년,상호 정밀실사 1년의 짧지 않은 노력이 물거품 됐다. 부실이 심한 현투증권의 재무구조와 AIG의 변덕스런 요구사항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정부의 협상력 부재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AIG는 지난해 8월말 MOU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현대증권 투입자금에 대해 △법규(할인율 10% 제한) 이하 가격으로 우선주 배정요구를 비롯 △우선주 배당률(5%) 상향조정 △우선주를 1년만에 보통주 전환 △투자금 손실보전 등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정부의 설명은 언제나 "협상과정에서 흔히 제기되는 카드"라며 애써 무시하는 태도를 견지했다. AIG가 최대현안으로 꾸준히 제기해 왔던 손실보전(Indemnification) 조항에 대해서도 같은 맥락에서 대응했다. 지난 16일에는 AIG의 요구사항이 담긴 ''최후통첩장''을 받았으나 이 역시 대수롭지 않게 평가했다. 상대방이 결렬을 선언하기 전날밤까지도 실무급은 "(협상성사를 위해) 9부 능선은 넘었다"고 말했다. ◇ 누구의 책임인가 =지난해 9.11테러 직후 AIG는 큰 손실을 입었고 현대투신 인수 협상에서 발을 빼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AIG는 외형적으로 협상추진을 공언해 왔다. 협상팀도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쟁점사항을 조율해 왔다. 명백한 이유없이 MOU를 깰 경우 손해배상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AIG측의 다소 무리한 요구도 수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며 MOU상의 시한을 연장해 가면서 매각성사 의지를 드러내 왔다. 상대방이 결렬선언을 한 뒤에야 "상대 컨소시엄 내부에 이견이 컸다"고 불발원인을 돌렸다. ◇ 전망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이미 인수의향서(LOI)를 낸 곳이 있다. 매각협상은 다시 추진된다는 방침도 발표됐다. 그러나 △매각의향서를 주고받고 △실사 △MOU체결 △본계약 성사까지 또 얼마나 시일이 걸릴지 아무도 예측키 어렵다.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헐값매각 우려도 있고 특혜시비도 예상된다면 국익을 고려,협상테이블에서 철수한 것은 오히려 잘한 판단"이라는 납득키 어려운 주장도 내놓고 있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