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잠을 깼다. 얼마나 누워 있었을까. 나른한 몸을 일으켰다. 멀리 기울어진 해가 서지나해를 온통 빨갛게 물들이고 있다. 사방이 고즈넉하다. 해변으로 밀려드는 파도소리가 적막함을 깨운다. 다시 해먹 위에 몸을 뉘였다. 야자수 잎 사이로 별들이 하나, 둘 모습을 내비친다. 해변가를 훑고 가던 바람이 해먹 그물코 사이로 살랑거린다. 손을 뻗어 망고쉐이크를 한모금 마셔본다. 그리고는 다시 바닷가에 뛰어든다. 서울의 매서운 칼바람을 피해 4시간을 날아와 닿은 이 곳은 남국 필리핀. ''동양의 진주'' 세부섬이다. 한국이 겨울을 접어드는 동안 세부는 건기를 맞는다. 습한 기운이 잦아들고 열대과일의 향이 더욱 짙어지는 시기. 어느때보다 세부의 유혹이 강렬해지는 계절이다. 막탄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여행객들은 그 농밀한 자태에 빠져든다. 바디안 =세부 남서쪽 바디안섬에 위치한 리조트로 지난 82년 문을 열었다. 막탄공항에서 차를 타고 3시간여동안 세부를 종단하면 선착장이 보인다. 바디안 섬까지는 배로 3분정도. 선착장에 도착하면 정갈한 코티지와 순백의 라구놔 해변이 맞이한다. 바디안은 특별한 해양스포츠나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진 않다. 여행객들도 큰 필요성을 못느끼는 듯. 그저 바디안의 풍광에 푹 젖어 있는 것만으로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무료해지면 스쿠버다이빙이나 골프를 해보거나 가와산폭포로 피크닉을 떠나보는 것도 좋다. 바디안의 다이빙 포인트는 세부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미려하다. 18홀 골프코스와 가와산폭포는 배를 타고 나가야 한다. 해질 무렵 선셋크루즈를 타고 맞이하는 낙조도 일품. 어둠이 깔린 후에는 풀장이나 해변가에서 뷔페식을 즐길 수 있다. 달빛 아래 펼쳐지는 필리핀밴드의 공연이 바비큐와 멋지게 어우러진다. 코르도바 =세부섬과 인근한 막탄섬의 남동쪽 끝에 위치해 있다. 공항에서는 7km 거리로 비교적 가까운 편이다. 바디안이 한적하고 우아한 자연미를 뿜어낸다면 코르도바는 다양하고 토속적인 감칠맛을 준다. 리조트 옆에 투계장과 마을이 있어 필리피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세부와 막탄 시내도 가까워 시내구경이나 쇼핑에 적합하다. 해양스포츠도 호핑투어와 스쿠버다이빙 외에 제트스키와 파라세일링 등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아직 개발이 덜 된 탓에 주변 풍광은 바디안에 비해 떨어지는 편. 대신 힐루뚱안섬의 선비치를 향하는 호핑투어가 기대치를 채워 준다. 코르도바에서 배로 20분정도 달리면 힐루뚱안섬의 선착장에 도착한다. 이곳의 산호밭은 스노쿨링의 명소로 이름이 높다. 전통마을을 끼고 펼쳐진 광활한 선비치는 넉넉함과 여유로움을 안겨준다. 인근 마을 어린이들이 ''마부하이(환영합니다)''라고 외침이 정겹게 들린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