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월요일 오전 7시50분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단지 북문 앞. 맞은편 상가 건물로 고교 1학년생인 임모양(17)이 바삐 올라가고 있다. 임양은 이 건물 3층에 있는 B학원에서 생물경시반 강좌를 듣기 위해 분당에서 나오는 길이다. 비좁은 강의실로 들어간 임양이 책상에 꺼내놓는 교재는 로버트 A 윌리스 등이 저술한 ''생물학''(을유문화사 번역). 주로 대학교에서 쓰는 교재로 1천페이지가 넘는다. 임양은 1주일에 다섯번씩 있는 수업때마다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니기 힘들어 각 장(章)별로 책을 찢어 갖고 다닌다. 임양은 그래도 생물경시반 수강생중 ''근거리'' 통학생축에 낀다. 멀리 수원이나 의정부에서 찾아오는 중3, 고1 학생들도 수두룩하다. 초.중.고등학생들에게 대치동 은마아파트 주변은 ''학원의 메카''로 통한다. 작년말 기준 강남.서초구에 들어선 학원수는 1천9백56개. 이중 대치동에 등록된 학원수가 3백36개. 보습.입시학원만 1백69개다. 숫자만 많은게 아니다. 영어는 J학원, 과학은 B학원, 사회는 D학원 등 소위 과목별 ''명문 학원''까지 등장했다. 어떤 학원은 들어가는 데만도 몇 개월, 심지어 몇 년을 기다려야 할 정도. 대치동 사거리 주변의 초등학교 글쓰기 전문학원인 M학원은 현재 2004년도 7월 입학생들을 모집하고 있다. 김모 상담원(36)은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다보니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0살짜리 아이들을 대기자 명단에 올리고 가는 임산부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런 ''극성'' 산모들 못지 않은 ''열성'' 부모들도 많다. 매주 목요일 밤12시를 넘겨 3호선 전철 대치역 근처에 가 보면 약 30대의 차량이 근처 K학원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절반 이상이 경기지역에서 온 차량. 차 안에는 K학원 최고의 인기강좌인 ''손선생 통합사회''를 듣고 나오는 학생들을 기다리는 부모들이 앉아 있다. 이모 상담원(34)은 "강남 지역은 물론 강북이나 일산 분당 과천 등 사방에서 학생들이 온다"고 말했다. 학원간 서비스 경쟁도 치열하다. 덕택에 학생들은 저렴한 수강료로도 질 좋은 교습을 받을 수 있다고. 은마아파트 주변 학원가가 강남 지역 주민들은 물론 타지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중 하나다. 지난해 12월 분당에서 서울 강남구 청담동 경기고 뒤편으로 이사한 주부 이씨(42)도 "분당에서는 중3짜리 큰 아이의 영어 수학 개인과외비만으로 한달에 1백만원이 나갔다"며 "하지만 강남에서는 학원강좌가 좋아 총 6과목 과외를 시켜도 월 1백만원이 안든다"고 말했다. 대치동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2000년 겨울방학 이후 이 지역 보습.입시학원이 급증하고 있는데다 특히 대형 학원이 속속 들어서면서 주변 상가건물의 임대료가 1년새 10% 안팎으로 뛰었다고 밝혔다. 최근 이 일대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뛴데는 ''명문대학 지름길=명문학원''이라는 등식이 실현되는 동네로 이사오려는 이른바 ''수능수요''도 한 몫을 했다고 현지 부동산 중개인들은 입을 모은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강남 학원가에 대한 세무조사를 강화하고 학원을 강북으로 분산시키는 방법을 마련하고 있지만 현장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학원 관계자들은 "공교육의 질을 높여 근본적인 처방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학원가 세무조사라는 응급처방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방실.송종현 기자 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