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 2번 출구를 나와 오른쪽 골목으로 돌아서자 찬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이 골목에 들어서서 60m쯤 걸어가면 유정빌딩이란 작은 건물이 나타난다. 아침에 방문하기로 약속한 ''한국기술교류주식회사''는 4층에 있었다. 여직원이 안내하는 사무실에서 기다리자 잠시 후 이 회사 대표인 박주탁 회장(52)이 들어와 "참 오랜만입니다"라며 손을 내밀었다. 박 회장. 그는 현재 종업원 5명을 거느린 전형적인 소기업 사장이다. 그러나 그는 5년 전만 해도 종업원 5천명을 거느린 중견 그룹의 총수였다. 회색 양복을 입은 박 회장은 예상외로 그룹 총수였던 때와 별로 다른 모습이 아니었다. 의욕이 있어 보였다. 5년 전 그가 경영하던 수산그룹은 수산중공업 수산특장 수산정밀 등 10개 기업이 똘똘 뭉쳐 급부상하는 중이었다. 영국과 중국에 현지법인을 두고 중장비 분야에서 세계 제패를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이 그룹은 빚더미였던 대동조선을 인수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중국에 수산조선소를 건설하는 데 돈을 쏟아붓는 바람에 자금난에 시달리다 1997년말 끝내 부도를 내고 말았다. 부도를 내던 날 수산빌딩 앞 식당에서 만난 박 회장은 눈이 무척 충혈돼 있었다. 그때 그는 기자의 손을 세차게 움켜쥐고 눈물을 주루룩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기필코 다시 일어납니다" 과연 그가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그동안 많은 그룹 총수들이 재기를 선언했지만 물거품으로 끝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기자는 그가 재기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이미 그가 온갖 역경을 이겨낸 기업인이란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오랫동안 실업자 생활을 했다. 그때 우연히 청계천을 지나다 공구상을 하는 고향 친구를 만나 친구의 공구상에 책상 한 개와 팩스 한 대를 놓은 것이 그의 첫 창업이었다. 맨손으로 출발했지만 그는 이때 드릴 수공구 등을 수입해 톡톡히 재미를 봤다. 그러나 수산무역이란 간판을 버젓이 내걸고 유압브레이커를 수입하면서부터 극심한 곤욕을 치르기 시작했다. 수입해온 장비가 1년 내내 한대밖에 팔리지 않아 실패를 겪으면서 한차례 피눈물을 흘렸다. 이후 그는 유압브레이커를 수입하기보다 직접 만들기로 했다. 이 장비를 개발,낮은 가격에 내놓자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이어 그는 크레인 특장차 등 40여가지 건설 중장비를 생산하면서 중견 그룹으로 올라선 것이다. 법정 관리를 받고 있는 수산중공업과 수산특장은 차츰 정상을 회복해가고 있으며 당시 수산의 직원들이 퇴직금을 모아 인수한 수산서비스는 다시 성장세를 타기 시작했다. 박 회장은 요즘 중국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선 적색 거래자로 금융 거래가 불가능해 중국에서 다시 창업해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룹 총수가 초라한 소기업 사장이 됐지만 청계천에서의 창업정신을 잊지 않는다면 한국기술교류주식회사는 틀림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와 굳게 악수를 나눈 뒤 헤어졌다. 이치구 전문기자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