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중견 화학업체인 D사의 회의실. 하나은행 기업영업본부의 이호성 부장이 임원들에게 자료를 나눠 주고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자료에는 향후 3년간 D사의 예상 경영성과와 현금흐름, 여신상환 계획 등 재무상황이 자세히 분석됐다. "회사 규모에 비해 현금보유액이 너무 많습니다. 자금 운용처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업무용 부동산중 일부는 매각하는게 낫겠습니다". 이 부장은 매출채권을 담보로 4백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해 낮은 금리의 자금을 조달할 것을 권했다. 부동산 매각작업은 은행내 투자개발팀에 넘기면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여유자금은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포트폴리오를 짜서 제출하겠다고 약속했다. D사 임원들은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다음 주에 다시 만나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자''며 회의를 마쳤다. D사의 사례는 은행의 기업금융 영업 형태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존의 소극적인 여신관리에서 벗어나 거래기업의 재무관리 서비스를 책임지는 재무담당임원(CFO)의 역할까지 맡고 있는 것. 이른바 ''섀도 CFO(Shadow CFO)''가 되자는 취지다. 이 부장은 "은행이 기업에 돈만 빌려 주던 시대는 끝났다"며 "유가증권 발행, 인수.합병,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 종합적인 재무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기업금융의 핵심 업무"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최근 각 은행은 거래기업에 종합적인 재무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담 조직과 프로그램을 앞다퉈 신설하고 있다. 한빛은행은 거래기업 가운데 여신규모가 비교적 큰 16개 중견기업을 선정, 3개월에 걸쳐 해당기업의 경영전략에서 재무관리까지 종합 진단해 줬다. 이 은행 정현진 종합금융팀장은 "기업고객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질뿐 아니라 부수적인 거래도 많아져 은행수익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한빛은행은 내달 15개 업체를 추가로 선정해 컨설팅을 시작할 계획이다. 신한은행은 경영 전문가들로 구성된 인력 풀을 활용해 거래기업에 경영자문을 해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50여개 업체가 서비스를 받았다. 조흥은행도 거래기업에 종합 재무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마련 중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거래기업이 건전한 재무상태를 유지하면 은행으로선 부실여신 감축과 수익원 확대라는 두 가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이같은 서비스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