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돈을 넣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 시대는 이제 끝난 것 아닙니까. 앞으로는 재테크 방법을 연구하고 발품을 파는 만큼 돈을 벌 수 있다고 봅니다" 퇴직자 안모씨(58.서울 반포)는 지난 3월 강남의 33평짜리 재건축 대상 아파트를 2억5천만원 주고 샀다. 은행이자가 싸 7천만원을 대출받아 집값에 보탰다. 현재 이 아파트 시세는 3억3천만원선. 취득세 등록세 은행이자를 빼도 9개월만에 6천만원 이상의 평가익을 내고 있는 셈이다. 개인들에게 2001년의 화두는 단연 '재테크'였다. 구조조정과 취업난이 계속된데다 은행금리가 사실상 '제로(0)'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 재테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올해 재테크 풍속도를 되짚어 본다. ◇ 옵션 열풍 =주식시장에 '옵션 광풍'이 일었다. 9.11테러 직후 국내 옵션시장에서 하룻새 5백5배의 대박이 터진 뒤 증권사마다 '신규계좌 10개중 8개는 옵션'이라는 말이 나왔다. 계좌 개설에 필요한 5백만원을 모으기 위해 배우자 몰래 '옵션 계'를 하는 직장인도 생겼다. 틈새시장을 노려 PC방 형태의 '옵션 투자방'이 등장했다. 수강료가 1백만원이 넘는 '전문 옵션투자자 교실'에는 퇴근길 넥타이부대와 주부, 전업투자자 등 수백여명이 자리를 메웠다. 증권사들은 지점을 돌며 '옵션 투자설명회'를 여느라 바빴다. '옵션 투자방'을 차려놓고 '억대 고객 모시기'에 나서거나 '옵션 실전투자대회'를 개최하는 증권사도 있었다. ◇ '명성' 되찾은 주식 =지난해 '깡통'을 찼던 개인들이 올해는 얼추 원금 만회에 성공했다. 52.4% 폭락한 종합주가지수가 올해는 37.5% 폭등한 것. 지난달 '종합주가지수, 내년말에 1,200 간다'라는 주제로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투자설명회에는 1천2백여명이 모여 북새통을 이뤘다. 근무시간에 인터넷 메신저인 '미쓰리'가 정보를 주고 받는 수단으로 애용돼 '미쓰리 주가'란 말이 유행했다. 구체적인 종목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버 고수'들의 인터넷 강의에는 매일 4백∼5백여명의 고정팬이 참여했다. 주가가 오르면서 세금공제 혜택이 있는 근로자주식저축이 '늦깎이 인기'를 누린 것도 올해의 특징중 하나다. ◇ 10여년만에 폭등한 부동산 =아파트 분양 때마다 청약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확보하려는 '떴다방'(이동 부동산중개업자)이 기승을 부렸다. 당첨자 명단이 나오자마자 즉석에서 분양권이 거래되는가 하면 주식처럼 '분양권 데이트레이딩'도 성행했다. 올해 서울지역 동시분양 청약 경쟁률은 평균 11.8대 1을 기록했고 9차 때는 사상 최고인 21.1대 1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평균은 6.6대 1이었다. 저금리 찬스를 이용해 대출금으로 집 장만을 하는 신세대도 부쩍 늘었다. 정부가 한시적으로 취득세와 등록세를 깎아주자 임대주택사업을 위해 다세대.다가구 건축이 급증했다. ◇ '숨어 있는 1%' 찾기 =금리에 민감한 개인들의 '대출 갈아타기'가 잇따랐다. 신용금고가 은행보다 2∼3%포인트 높은 금리를 적용할 때마다 돈 봉투를 들고와 '내돈부터 받아달라'는 장사진이 형성되곤 했다. 심지어 지방 거주자들이 전세버스를 타고 집단 상경하는 일도 있었다. 지갑에 신용카드만 넣고 다니는 '알뜰파'가 많아졌다. 신용카드 세금 공제폭이 확대된데 따른 것. 올해 민간소비중 신용카드 결제비율은 48.7%. 1백만원어치를 사면 48만7천원은 카드로 그었다는 얘기다. 지난해 이 비율은 26.9%였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환테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외화예금자는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환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 씁쓸한 예금가입자 =1억원을 은행에 맡겨도 세금을 빼고 나면 한달에 손에 쥐는 금액은 40만원이 채 못됐다. 정기예금 금리가 지난해 6%대에서 올해 4%대로 하락한데 따른 것. 물가상승률 4.3%(한국은행 예상치)를 감안하면 수익률은 제자리 걸음 또는 마이너스였다. 이자로 먹고 사는 노인들은 적금을 깨야만 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