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증권시장도 어김없이 각종 게이트와 주가조작 사건으로 얼룩졌다. 아직까지 검찰수사가 진행중인 '진승현게이트''이용호게이트' 등 초대형 사건을 비롯해 대주주가 연루된 시세조작 사건이 이어지면서 증시의 힘을 뺐다. 그러나 긍적적인 변화도 분명 있었다. 올해 증시와 시세조작을 염두에 두고 벌어지는 이러저러한 '작전'들이 더 이상 먹혀들지 않게 된 것이다. 올해 증시와 상장(등록)기업 모두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체질이 크게 개선된 결과다. 특히 코스닥시장을 중심으로 활개를 쳤던 인수후개발(A&D)과 우회등록(백도어리스팅) 등을 표방한 각종 '머니게임'들이 속속 한계에 부닥쳤던 것은 올해 증시에서 두드러졌던 변화다. 여기에는 그동안 증시 위축을 우려해 주가조작 등에 소극적이라고 평가됐던 정부 당국과 증권관련기관이 단속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도 주효했다. ◇퇴색한 A&D=지난해까지 코스닥시장의 최대 호재로 작용했던 A&D나 우회등록은 재료로서의 가치를 잃었다. 리타워텍 바른손 등 소위 1세대 A&D 관련주들의 신통치 않은 경영실적 등이 원인이 됐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는 지난 1년간 A&D와 우회등록을 추진한 대부분의 기업들이 주가조작 의혹에 연루되거나 주가급등후 최대주주의 지분매각 등으로 'A&D=작전'이란 등식이 일반화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A&D 등이 오히려 악재로 작용해 구체적인 사업내용의 발표시점이 주가하락의 전주곡이 되고 있는 양상이다. 금융감독원도 코스닥시장의 A&D와 우회등록에 대해 적극적인 제재조치를 취하고 있다. 올 들어 모바일원 IHIC 세림아이텍 인텔리테크 등의 경우 장외등록과의 주식교환이나 합병을 통한 우회등록을 추진했으나 금감원의 유가증권신고서 반려 등에 부딪혀 큰 차질을 빚었다. ◇작전의 반작용으로 제도개선 잇따라=진승현·이용호게이트 등 주가조작의 악순환은 역으로 시장의 체질개선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 불공정거래와 이상매매를 감지해 '작전'을 사전에 봉쇄하는 제도개선이 잇따랐다. 금감원과 검찰도 주가조작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고 강도높은 처벌 의지를 천명했다. 작전의 '온상'으로 치부돼 왔던 A&D와 우회등록기업에 대한 규제도 강화됐다. 비상장법인을 출자형식 등을 빌려 인수할 때 피인수기업 주식가격의 산정근거와 평가기관의 이름을 함께 공시토록 의무화했다. 금감원은 지난 11월말 현재 시세조작과 미공개정보이용 등의 혐의로 1백40건을 적발했다. 이는 지난해 총 83건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금감원이 검찰에 고발·수사의뢰한 건수도 지난해 94건에서 1백32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금융감독원 조사1국 김영록 국장은 "적발건수의 증가는 불공정거래 자체가 늘었다기보다는 감리시스템 구축 등 제도개선과 잇단 주가조작 사건으로 당국의 처벌 의지가 강화된 결과"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과제=증권거래소와 증권업협회 등 자율규제기관의 시장감시 기능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 시세조정 유형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어 불공정 행위에 대한 포괄적 규제조항이 신설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형사고발이 적절치 않은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는 민사제재금 제도를 도입,부당이득금을 철저히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증권거래소 김정수 감리총괄팀장은 "주가조작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투자자 보호의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가 경제사범에 대해 철저하게 법을 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