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국금융의 발전 조건 .. 咸駿浩 <연세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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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3일 한국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은 5백70억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구제금융조치에 합의했다.
연일 돌아오는 빚 막기에 밤낮이 없었던 금융기관과 기업들은 이로써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로부터 4년.5백여 금융기관이 문을 닫았고 금융권 인력 3분의 1이 감축되는 등 우리 금융부문은 큰 변화를 겪었다.
1백50조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이 부실정리에 투입됐고,이전에는 상상조차 어려웠던 수많은 개혁조치도 함께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금융을 떠올리면 아직도 불안감이 앞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처에 잠재해 있는 부실도 부실이거니와 한치 앞이 불확실한 경제여건도 한 원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과연 우리 금융이 올바르게 변화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국민경제에서 금융이 담당하는 기능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는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기능이다.
이러한 재원배분 기능은 국민경제 전체로는 성장과 후생,그리고 개별 금융기관 차원에서는 수익성과 직결된다.
둘째는 배분된 재원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감시하여 부실을 사전에 방지하고,일단 부실이 발생하면 이를 효율적으로 정리해 충격을 최소화하는 기능이다.
이러한 모니터링 기능은 국민경제의 안정성에 영향을 미치며 개별금융기관의 건전성과도 직결된다.
그간의 개혁조치를 특징짓자면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한국금융이 은행을 중심으로 하는 간접금융 중심의 전통적인 관계형시스템에서 자본시장을 중심으로 한 시장형시스템으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외이사제도의 도입,소액주주권 및 공시제도의 강화 등이 그렇다.
흥미로운 사실은 세계은행도 지적하고 있듯이 우리의 금융시스템이 이미 위기이전부터 시장형시스템으로 분류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혼란은 우리 금융의 겉모습과 실제 기능이 괴리돼 있었음에 기인한다.
위기이전의 우리 금융시스템은 진정한 의미에서 관계형도 시장형도 아닌 차별적 규제완화와 정부의 암묵적 보증으로 왜곡된 기형적 시스템이었다.
회사채 등 직접금융수단에 대한 은행의 지급보증과 재벌의 금융기관 소유는 대마불사의 믿음과 함께 직접금융시장과 비은행금융기관의 준(準)은행화 현상을 초래했으며,이러한 유사 은행권의 존재는 감독부재와 더불어 왜곡된 자금흐름이 방치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은행중심의 관계형이든 자본시장 중심의 시장형이든 위의 두 금융기능을 수행함에 있어 본질적 차이는 없다.
다만 은행중심 시스템이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거듭된 거래에 의해 축적된 내부정보에 기초해 재원을 배분하고 손실발생시 이를 단기간에 흡수하는 특징을 갖는 반면,시장중심형 시스템은 다양한 이질적 정보에 기초하여 재원이 배분되며 발생한 손실 또한 단기간에 다자간 분담된다는 점이 다르다.
금융시스템 역시 다양한 사회,문화,법제도적 기반에 기초해 형성되는 것이므로 어떤 시스템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단정짓기는 어려우나,작금의 금융시장 통합화와 정보의 복잡다기화 추세를 고려하면 시장형시스템의 기능강화는 현 시점에서 긴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결국 은행은 은행대로,자본시장은 시장대로 담당해야 할 기능과 영역이 있다.
은행의 중개기능이 취약한 자본시장,자본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은행시스템,이 모두가 절름발이 시스템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시급히 마무리해야 할 과제는 외형적인 틀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과거 왜곡으로 점철되었던 금융의 본질적 기능을 되살리는 일이다.
자본시장과 금융기관이 수익과 위험에 기초하여 철저히 시장원리에 따라 움직일 때 금융의 재원배분기능과 모니터링기능이 원활히 작동되며,결과적으로 경제전반의 효율성과 안정성이 확보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시장의 하부구조를 구축하고,금융감독을 철저히 수행하며,소액예금자 보호 등을 통해 시스템 리스크를 방지하는 본연의 역할로 되돌아감이 가장 중요하다.
jhahm@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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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