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집을 내는 시인들의 속은 까맣거나 하얗다. 숯처럼 타고 또 타서 마침내 하얀 재로 남는 마음.오래 빚고 다듬은 시편들이 우리를 옷깃 여미게 만든다. 권혁웅씨(34)의 '황금나무 아래서'(문학세계사)는 음악성과 회화성,절제의 미학이 어우러진 시집.지난해 '현대시 동인상'을 받은 그의 시는 정교한 세필처럼 뛰어난 묘사력과 독특한 감수성의 결로 반짝인다. '오래 전 사람의 소식이 궁금하다면/어느 집 좁은 처마 아래서 비를 그어 보라,파문/부재와 부재 사이에서 당신 발목 아래 피어나는/작은 동그라미를 바라보라'로 시작하는 '파문'은 거문고의 술대처럼 마음의 현을 튕기는 작품이다. 황경식씨(55)의 '실은,누드가 된 유리컵'(문학세계사)은 늦깎이 시인이 보여주는 도발적인 시편들로 빛난다. 젊은 시인들보다 더 발랄하고 깊이있는 걸음걸이로 그는 폭넓은 이미지의 진폭을 보여준다. '누드로 요염한 빛을 흘리는 유리컵에/늘푸른 나뭇잎 한장을 덮어주고 싶었다'는 표제작부터 특유의 조형법으로 다가온다. 반칠환씨(37)의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시와시학사)은 명치끝을 아릿하게 치는 시집.들머리의 '지킴이의 노래'를 비롯 '어머니' '아버지'연작 등 한 많은 가족사의 노래가 애틋하고 눈물겹다. 거기에 과장없는 서정의 아름다움을 곁들이고 '속도에 대한 명상'까지 보태 더 큰 울림을 준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