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가 프랑스와 체코에 연달아 5대0으로 졌을 때 큰 탈이라도 난 듯 야단이더니,크로아티아에 1승1무를 거두자 이제 유럽 팀과도 해볼 만하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자신감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고,실력이 향상됐으면 더욱 좋은 일이다. 그러나 승부세계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으레 있는 일인데 과잉반응을 보이거나 너무 흥분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월드컵대회가 앞으로 6개월 남짓 남았다. 한국팀이 잘 싸워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어디 숨길 수 있겠는가. 조 추첨에서 행운이 따른다해도 한국은 객관적 전력으로 미루어보아 아시아권 2개국을 빼고는 상대하기에 벅차다는 것이다. 하지만 16강,나아가 8강에 오르는 기적을 바라는 건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스포츠가 좋은 건 우선 재미있다는 점이다.직접 해도,구경을 해도 재미있다. 김병현 선수가 승리를 눈앞에 둔 순간 홈런을 맞고 두번이나 경기를 망쳤을 때 소속팀 선수나 감독은 아무도 그를 원망하지 않았고 그를 감싸안았다.그리고 그들은 결국 이겼다. 얼마나 짜릿한 드라마였던가. 그들이 김병현을 감싸안은 것은 그가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선수가 가지고 있는 매력 때문에 관중은 열광한다. 묘기를 발휘하는 생명력의 덩어리 같은 모습을 연출하는 선수는 스타다. 박찬호의 몸값이 많이 오르기를 바라는 게 우리들 마음이지만,이제 한국에서도 스타급 선수들의 몸값은 서민들이 평생 만져보기도 어려운 액수로 치솟고 있다. 실력이 있으면 돈은 벌게 돼있는 게 프로의 세계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진정한 스타는 운동장에서는 물론이고 사회와 나라를 위해 자기 몸을 던지는 데서 빛을 발휘한다.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하던 1941년 12월7일 아침,뉴스를 들은 미국 야구선수 밥 펠러는 징집대상자도 아니었는데 자원 입대한다. 메이저리그에서 그해까지 4년 연속 탈삼진왕,3년 연속 다승왕에 빛나는 톱스타 투수였지만 돈과 명예를 뒤로한 채 그는 조국을 위해 전쟁터로 갔다. 해군전함에서 대공포를 쏘며 44개월 동안 태평양을 누비다가 45년 8월 제대,그해 후반기에 다시 마운드에 섰고,46년과 47년 2년 연속 다승왕,48년까지 3년 연속 탈삼진왕이 됐다. 화려한 복귀였다. 이 밖에도 그때 전장으로 달려간 메이저리그 톱스타들은 수없이 많다. 감독과 구단주들도 아들들에게 군복을 입혔다.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일에 앞장선 것이다. 미국야구가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게 우연이 아니다. 얼마 전 대만에서 열린 제34회 야구월드컵대회에서 한국은 6위로 기대 이하의 성적을 보였다. 프로선수가 처음으로 참가하는 사상 최대규모의 대회였지만,병역면제의 혜택을 염두에 두고 선수를 선발한 이름뿐인 드림팀이었다. 결과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고,드림팀은 헛꿈만 꾸었다. 언제부터였던가. 몸에 이상이 있다는 이유로 병역면제를 받은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펄펄 뛰고 있다. 자칭 스타들의 일그러진 모습이고 우리 사회의 어두운 자화상이다. 스포츠가 좋은 점은 정정당당히 겨뤄 승부를 낸다는 점에 있다. 냉혹한 승부세계에는 어떤 권력도 로비도 비자금도 소용이 없다. 결과는 분명하고 깨끗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열광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국민적 단합이 이루어진다. 오래 전 파리에서 열렸던 데이비스컵 대회 때 일이다.미국선수(칠덴)가 친 공이 라인근처에 떨어져 심판이 아웃을 선언하자,그 공을 못 받은 프랑스 선수(코셰)는 자기가 불리한데도 아웃이 아니라고 말해 결국 세이프로 판정됐다.그러자 코셰의 서브 때 칠덴은 그 공을 일부러 라인 밖으로 쳐내 그에게 1점을 바쳤다. 그의 신사적인 행위에 보답하겠다는 뜻이었다. 이 얼마나 멋진 승부인가. 판정시비는 고사하고 경기에 졌다고 운동장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스포츠는 이미 스포츠일 수 없다. 의사당에서 멱살잡는 정치는 이미 정치가 아니듯이.정치도 경제도 스포츠처럼 펼칠 수는 없는가. 정정당당히 경쟁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정치와,경쟁에서 이기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경제,그러한 정치와 경제를 기대하려면 그 답은 아무래도 스포츠정신에서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yoodk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