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연수원장에서 어떤 분과 산책을 하는데 저쪽에서 여성 수도자 두 분이 앉아 낮은 소리로 노래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들의 고운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빙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함께 가던 그 분이 나보고 잠깐 기다리라며 자기는 가서 싱겁을 좀 떨다 와야겠다는 것이다. 그 분이 뚜벅뚜벅 걸어가서 "왜, 아침부터 허전하시우?"하고 말을 건네자 그녀들은 무슨 짓궂은 트집이냐는 듯 눈을 흘기며 환하게 웃었다. "곱상하게 노래하는 폼을 보니 남자 생각이 나는가 보구려"하자 마구 몸을 흔들어대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 분도 껄껄거리며 돌아섰다. 과연 저들은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비켜가려던 나를 더 좋아할까, 아니면 다가가 객쩍은 농을 거는 저 분을 더 좋아할까. '그래도 사람이 좋다'(장성숙 지음,나무생각,8천원)에 나오는 대목이다. 남에게 피해를 줄까봐 배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밋밋하기 짝이 없는 사람은 재미가 없다. 예기치 않은 웃음을 선사할 줄 아는 사람은 고단할 때 따뜻한 위로도 해줄 줄 안다. 저자는 가톨릭대 심리학과 상담전공 교수. 20여년간 개인과 집단 상담을 통해 현장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나직나직 들려준다. 누구나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는 인생의 길 위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일궈내고 그 포근한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일러준다. 혼전 과거를 고백했다가 남편과 냉랭해진 여성의 사례에서는 '때로 단지 같고 때로는 접시 같다는 면을 갖춰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섭리도 일깨워 준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