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경제개발과 민주주의..洪元卓 <서울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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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정치경제학자 올슨(Olson)이 죽기 직전에 쓴 '힘과 번영'이라는 저서가 작년에 출판됐다.
경제학자라면 정치경제학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국가의 통치자(혹은 지배자 집단)가 어떤 식으로 사고를 하고 행동하는지를 설명하고 예측해야 할 필요를 느낄 때가 많다.
우리 같이 정치적 현실과 거리를 두고 사는 사람들은 국가 통치자들이 과연 어떤 식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불가사의할 때가 많다.
마침 올슨의 저서를 보고 그의 이론에 공감하게 됐고,우리 국민 모두 그 내용을 알게 되면 세상 돌아가는 핵심을 이해하는 통찰력이 생길 것 같아 그 내용의 일부분을 소개한다.
물론 다산칼럼이 서평란이 아니란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도 서평은 아니다.
올슨은 자신의 이론의 핵심적인 내용을 알아듣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 좀 과장이 된 비유를 많이 한다.
그는 후진국 사회의 통치자들을 크게 두종류로 나눈다.
떠돌아다니는 뜨내기 도둑과,한자리에 정착한 붙박이 도둑이다.
전자는 약탈과 파괴를 자행하고 사라진다.
약탈대상 주민을 다시 볼 생각이 없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후생을 고려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하지만 후자는 장기간 혹은 영구적으로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특정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도둑질을 해야 하기 때문에,접근방법이 다르게 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잡아먹으면 다시는 황금알을 구경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거위를 잘 보살피고 먹여주어야 한다는 우화를 연상해 보면 된다.
자신이 통치하는 주민들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긴 안목을 갖고 사회간접자본시설에 투자하고,안정적으로 기업활동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주고,여러 가지 공공재를 공급해 준다.
주민의 생산활동이 왕성해지고 축적되는 부의 규모가 클수록 이들로부터 매년 빼앗을 수 있는 생산물의 규모가 커지는 것이다.
마피아 같은 조직폭력단들이 각자 영역내의 사업체가 장사를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올슨은 자비로운 독재자의 존재 가능성도 인정한다. 자기생전에 도둑질할 대상으로 국민을 보는 것이 아니라,온 국민의 후생 증진 그 자체를 위해 투자하고 공공재를 공급한다.
하지만 이런 존재는 지극히 예외적이고,자비로운 통치행위는 잘해야 그 당대에 그친다.
자비로운 독재라는 것은 제도화될 수 없기 때문에 영속성이 없는 것이다.
아주 우연적이고 일시적인 돌연변이 현상쯤으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아마 후진국 학자가 이런 얘기를 한다면 사람들이 별로 놀라지도 않을 것이다.하지만 선진국의 한복판에서,미국 메릴랜드대학의 교수 노릇을 하면서 이런 발상을 했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이다.
민주주의란 다수가 소수를 착취하는 제도로 간주한다.
그래도 올슨은 민주주의가 국가경제 발전에 가장 좋은 체제라고 믿는다.
한명의 독재자나 한줌의 지배계급이 전 국민을 수탈하는 것이 아니고,비록 소수가 희생되지만 다수 국민이 그 수혜자인 것이다.
민주 정부가 투자하고 각종 공공재를 공급할 때 그 수혜대상은 국민의 다수가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는 종종 다수가 소수의 지지를 확보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따라서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 최소화 될 가능성이 크다고 믿는다.
올슨이 민주주의 체제의 가장 취약점으로 생각하는 것은 특정 이해집단들의 존재다.
이들 집단은 전체 국민의 희생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려 하는데,민주주의 제도는 이들의 해악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특정 이해집단의 존재보다 사이비 민주주의 제도의 존재 가능성을 더 염려한다.
특정자연인 혹은 소수의 집단이 제도의 취약점을 악용해 선거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통치권을 장악한 다음,전 국민의 희생위에 소수의 부귀영화를 추구할 가능성이다.
이런 나라는 외형상으로 보면 민주국가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실제로는 약탈적 독재체제와 별반 다름이 없을 것이다.
단순히 국민들이 자유롭게 선거를 한다고 해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러한 제도적 왜곡을 시정하려면 국민의 대다수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정치경제 체제에 대해 통찰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wthong@nur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