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가 소극적 안락사와 낙태를 사실상 인정하는 내용의 '의사 윤리지침'을 공포했다. 이중 일부는 현행 법과 배치돼 생명윤리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될 전망이다. 의협은 15일 조선호텔에서 열린 의협 창립 93주년 기념식에서 이같은 내용의 의사 윤리지침을 발표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마련된 의사 윤리지침은 의료인의 사회적 역할과 의료행위별 윤리기준 등을 총 78개 조항에 담고 있다. 윤리지침은 30조에서 '의학적으로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나 그 대리인이 생명유지 치료를 비롯한 진료의 중단이나 퇴원을 문서로 요구하는 경우 의사가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살 가망이 없는 환자에게 진료행위를 포기하는 '소극적 안락사'를 부분적으로 인정한 대목으로 해석된다. 이와관련, 의협의 전 법제이사인 이윤성 교수(서울의대 법의학)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과다한 연명 치료를 않는다는 뜻"이라며 "의도적으로 필요한 치료를 하지 않아 환자를 사망케 하는 소극적 안락사와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윤리지침은 또 54조에서 '의학적.사회적으로 적절하고 합당한 경우라도 인공임신중절수술(낙태)을 시행하는데 신중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는 의사가 특별한 주의의무를 지킨다면 낙태행위를 윤리적으로 인정한다는 뜻을 담은 것이다. 그러나 서울지법은 지난 14일 산모의 낙태요청을 받고 28주가 된 태아를 유도 분만한 뒤 독극물을 주사해 숨지게 한 산부인과 원장에게 살인죄를 적용, 낙태에 대한 엄격한 입장을 확인했다. 의협은 대리모 관련 윤리지침(56조)을 통해 '금전적 거래 목적의 대리모 관계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 금전적 거래 외의 대리모 출산을 인정키로 했다. 이 교수는 "의사는 의료현장에서 자신의 판단에 따라 갖가지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며 "현실적으로 법이 따라가지 못하는 부문에 대해 의사가 지켜야할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법조계 관계자는 "의협이 실정법에 저촉되는 지침을 만든다면 의사들의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며 "이처럼 민감한 지침에는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