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19일. 상하이 증권거래소 시세판에 새 얼굴이 등장했다. 중국 최대 민영은행인 민성은행(民生銀行)이 상장된 것. 거래소에서 간단한 상장 축하 의식이 열렸다. 금융관계자 일색이었던 이 행사에 낯선 인물이 한 명 등장했다. 류융하오(劉永好.50) 신시왕(新希望)그룹 회장이 그 주인공. '사료공장 공장장'으로 잘 알려진 그는 민성은행 최대 주주자격으로 행사에 참여했다. '사료공장 공장장에서 민간은행 최대주주로' 류 회장의 인생 유전이다. 그의 발자취는 곧 지난 20여년동안 추진된 개혁개방 과정을 통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중국 기업가의 성장 역사이기도 하다. 지난 82년 류 회장은 교직을 그만두고 그의 형 류융싱(劉永行)과 함께 사업에 뛰어든다. 그는 손목시계 자전거 등 돈 될 만한 것은 모두 팔았다. 모아진 돈이 약 1천위안(1위안=약 1백55원). 그는 이 돈으로 양계장을 세워 사업에 나섰다. 닭 메추라기 등을 사육하던 류 회장은 농축사업 현대화에 눈을 뜨게 된다. 사료 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한 그는 88년 사료공장을 세웠다. 사업 터전이 땅에서 공장으로 옮겨진 것이다. 그는 음식 찌꺼기를 활용한 고유 사료를 개발, 4년만에 약 1억위안을 벌어들였다. 90년대 중반 이후 류 회장의 사업은 공장을 벗어나 서비스업으로 확대된다. 중앙 및 지방정부가 매물로 내놓은 국유기업을 사들여 정보기술 무역 부동산개발 관광 등으로 진출했다. 지난 99년에는 민성은행 주식을 매입,경영권을 획득하면서 금융업계 큰손으로 등장했다. 그가 작년 12월 상하이 증권거래소에 나타난 이유다. 신시왕 그룹은 현재 산하 기업 76개, 직원 1만명을 고용하고 있는 중국 제3위 민영기업으로 성장했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우리에게 기회입니다. 경쟁력 있는 민영기업에 더욱더 넓은 활동공간을 제공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민성은행을 사들인 것도 민영기업 발전을 위한 것입니다" 류 회장 형제는 민성은행 상장으로 일약 83억위안의 자산을 가진 포브스지 선정 중국 최대 갑부로 등장했다. 광둥(廣東)성의 전자레인지 전문 생산업체인 거란스(格蘭仕)의 량칭더(梁慶德.64) 사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또 다른 사례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선언했던 1978년. 광둥성 순더(順德)현 주장(珠江) 삼각지 모래밭에 '거란스'라는 작은 공장이 하나 들어섰다. 량 사장이 친구 10여명과 돈을 모아 세운 가전제품 회사였다. 당시 이 업체에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시골의 농촌 잉여인력 흡수를 위해 세워진 평범한 향진(鄕鎭)기업중 하나였을 뿐이다. 중국인들은 지난 9월 거란스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거란스' 상표가 중국 정부로부터 '중국 최고 브랜드(中國第一名牌)'상을 받은 것이다. 거란스는 연간 1천5백만대의 전자레인지를 생산하는 이 분야 세계 최대 업체. 중국 시장의 약 75%, 세계 시장의 35%를 점유하고 있다. 전체 생산량의 3분의 2를 해외로 수출한다. 세계 가정에 보급된 전자레인지 3대중 하나는 '格蘭仕' 상표가 붙어 있는 셈. 향진기업이 세계 공장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같은 기업가들의 활약은 중국 산업계 무게중심을 국유기업에서 민영기업으로 옮기고 있다. 민영기업이 국유기업을 인수하고 실직자를 흡수하는 등 그 영향력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마훙(馬洪)은 "앞으로 10년간 민영기업이 국유기업을 흡수하는 일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이를 두고 '민영기업의 화려한 반란'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