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만큼 '쉬워 보이는' 사업이 또 있을까. 판을 짜는게 문제지, 일단 벌여만 놓으면 돈 버는 건 무척이나 간단할 것 같다. 여느 사업처럼 재고 때문에 고민할 필요도 없고 생산품에 들어가는 원재료도 별반 특별한게 없다. 감가상각? 일반 업체가 보면 웃을 일이다. 게다가 어느 나라에나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은 차고 넘친다.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는 노다지사업이다. 그래서인지 영화속에 등장하는 카지노 사장의 모습은 하나같이 게으르고 거만하다. 치열한 경영활동과는 한참 거리가 있어 보인다. 강원랜드의 김광식 사장(60). 그도 연간 매출액이 4천억원을 넘어서는 대형 카지노의 수장이다. 하지만 그가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에서는 느슨한 기운을 찾아 보기 힘들다. 오는 28일로 개장 1주년을 맞는 강원랜드를 찾았다. 24일 밤 9시가 넘은 늦은 시각인데도 김 사장은 카지노 호텔 내 집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원래 이렇게 늦게까지 근무하느냐"는 질문에 "지금이야말로 한참 일할 시간"이라는, 다른 곳에서는 좀체 듣기 힘든 대답이 돌아왔다. 테이블에 커피가 놓여 있는 걸 보니 정말 잠자리에 들 시간은 아직 멀었나 보다. "개장 초기 몇 달간은 하루에 세시간 정도밖에 눈을 붙일 수 없었어요. 누구도 해보지 않은 내국인용 카지노를 오픈한다는게 보통 힘드는 일이 아니더라구요. 그게 습관이 돼서 그런지 지금은 아예 12시 이전에는 잠이 오지 않습니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김 사장은 카지노장을 둘러봐야 한다며 기자의 손을 이끈다. 카지노 곳곳에서 만나는 직원들도 늘상 겪는 일이라서 그런지 사장을 대하는 태도가 익숙하다. 이렇게 자주 사장을 대하는 직장이 또 있을까. VIP룸에 들어서자 게임에 몰두하고 있던 낯익은 연예인이 눈에 들어왔다. 김 사장을 보고는 익살스런 경례와 함께 "바카라!"(게임명칭)라고 외치는데 기자의 귀에는 마치 "단골(손님)!"처럼 들려왔다. 김 사장의 부지런함은 사내에 정평이 나 있다. 오전 7시에 출근해 자정이 넘어서야 퇴근하는 강행군을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오고 있다. 추석 당일에도 서울에서 회사로 출근, 직원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회사 명의의 48평짜리 관사를 마다하고 직접 마련한 9백만원짜리 13평 전세아파트에서 생활하는 검소함도 직원들에겐 건전한 부담이다. 김 사장은 공무원 출신이다. 과거 상공부시절 기술직으로 공직을 시작해 석탄분야에서만 잔뼈가 굵은 석탄맨이다. 지난 99년 8월 강원랜드 대표이사로 공채돼 카지노와 인연을 맺었다. "원래 카지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어요. 다만 30년간 쌓아 온 공직생활의 경험을 살려 투명하고 건전한 사업체를 만들어 보겠다는 욕심에 자리를 옮기게 됐습니다" 강원랜드를 맡으면서 김 사장은 경영의 제1목표를 '사업의 투명성'에 뒀다. 엄청난 현금이 오가는 사업인 만큼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고서는 기업이 존속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우선 모든 시스템을 하나의 전산망으로 통합했다. 카지노에 쓰이는 칩을 바꿀 때도 반드시 컴퓨터에 입력하도록 했고 4백80여대의 슬롯머신도 모두 전산화했다. "사업초기에는 매출액의 일부가 유용되고 있다는 곱지 않은 루머도 떠돌았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시스템상 1원짜리 하나도 새나갈 구멍은 없습니다. 전산에 입력된 금액과 영수증, 계산기의 현금 등을 매일 비교해 완전히 일치해야만 정산을 마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은행 저리가라' 입니다" 일화 한가지. 현금을 만지는 직원들은 주머니가 없단다. 의심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꿰맸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모자라 곳곳 영상감시장치도 대폭 확대했다는게 김 사장의 설명이다. 김 사장을 비롯한 9백여 임직원의 이같은 노력은 최근 하나의 결실을 맺었다. 코스닥 등록이 바로 그것. 25일부터 첫 거래가 시작됐다. 하지만 코스닥 등록으로 인해 김 사장은 또 하나의 숙제를 떠안게 됐다. '폐광지역경제 활성화'라는 공익성 외에 일반주주를 감안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다고 일반 기업처럼 수익성 극대화에 총력을 기울일 수도 없다는 점이다. 매출신장에만 주력하다보면 도박중독자 양산과 같은 사회적 부작용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우선은 수익성 확대보다 건전한 게임문화를 형성하고 강원랜드를 종합레저타운으로 성장시키는데 힘을 모을 생각입니다. 당장은 손해일지 몰라도 사행산업에 몰두해 사회적 손실과 비판을 양산하는 것보다는 장기적으로는 이 방안이 회사발전과 주가상승에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김 사장은 또 일반주주들을 위해서 당분간은 증자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방침이다. 김 사장은 "증자를 하게 되면 주식의 가치가 희석된다"며 "이는 외환위기라는 최악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주식공모에 참여해 준 주주들의 고마움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랜드는 올 한해 4천억원 이상의 매출과 2천억원가량의 순이익을 올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개장 초기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놀라운 성과다. 이에 대해 김 사장은 "경영실적이 이처럼 기대치를 초과한 것은 임직원들이 밤낮없이 수고해 준 덕분"이라며 "아직도 카지노사업의 부정적인 면만 부각되고 있는게 사실이지만 앞으로는 매년 1천억원 이상의 세금과 각종 장학사업을 통해 국가와 지역경제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는 순기능에도 주목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선=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 ------------------------------------------------------------------ [ 약력 ] 전남 나주 출생 광주공업고등학교 졸업 조선대학교 자원공학과 졸업 67년 상공부 광무국 채광기사 동력자원부 광무국 채광기좌 대한석탄협회 부장 석탄산업합리화사업단 기획실장 석탄산업합리화사업단 합리화본부장 석탄산업합리화사업단 이사장 99년 강원랜드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