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귀신이 온다"는 역사에 농락당한 개인사를 추적한 영화다. 심각한 주제임에도 불구,관객들은 시종 웃음을 터뜨린다. "붉은 수수밭"에서 주연을 맡았던 지앙 웬(姜文)이 감독으로 나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2차대전 말기,일제 점령하 중국의 가난한 마을이 배경이다. 결박당한 일본군과 중국인 통역관이 들어 있는 자루 2개가 농부 마다산의 집에 배달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마을사람들은 고민에 휩싸인다. 이들을 살려두면 자칫 해를 입을 가능성이 커서 눈 딱 감고 죽여야 하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들이라 죽이지를 못한다. 영화는 극한 상황에서 수시로 변해 가는 등장인물들의 인성을 추적한다. 포박된 일본군은 처음에는 거세게 반항하지만 점차 중국인들에게 감사하게 되고 보은을 결심한다. 그러나 자대내에 돌아간 뒤 다시 변심한다. 착한 마다산은 포로들을 살려 돌려 보내지만 마을 사람들이 일본군에 살해되자 그들을 찾아 나서 살인마로 돌변한다. 감독은 인물들의 행동을 강조하기 위해 흑백필름을 사용했다. 비스듬한 조명으로 명암 대비가 선명한 인물들의 표정에는 생동감이 넘친다. 중대한 순간에 당나귀가 엉겨붙어 교미를 하고,참수형 직전 파리 한 마리가 목덜미에 달라붙고,돼지 한 마리가 난데없이 뛰어드는 장면 들은 삶의 혼란스럽고 부조리한 단면들을 드러낸다. 26일 개봉.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