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Trust)'가 사회적 자본이라는 주장이 최근 널리 인정되고 있다. 공통의 목적을 위해 집단과 조직 내에서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되는 신뢰는,경제학에서 생산요소로 평가하는 자본 노동 기술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로서 한 사회의 생산력 발전과 복지 증가의 기초가 된다. 역사상 성공한 나라들을 보면 반드시 신뢰로 결합된 자율적 공동체가 기반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신뢰기반이 가파르게 무너지고 있다.우리가 뽑은 대표들로 구성된 국회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져 있다.정치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정치적 대립과 갈등이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되고 있어 국민들은 불쾌하고 지쳐 있다.정치란 국민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국민에게 끊임없이 '짜증'을 불어넣고 있다. 또 경제적 신뢰가 낙제점 아래로 하강하고 있는 것은 책임있는 사람들의 잦은 '식언' 때문이다. 불확실한 정보를 갖고 경기회복에 대한 예언을 너무 쉽게 하고 이것을 수시로 바꿔,정부발표를 믿지 못하게 하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경기변동은 항상 있는 것,그렇다면 솔직하게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어려우면 어렵다고 알리고,회복시기를 모르면 모른다고 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하고 바람직하다. 기업의 분식회계도 우리경제에 대한 국제적 신뢰를 떨어뜨려 건전한 기업들마저 제 가치를 평가받지 못하게 하고 있다. 벤처의 활성화가 한국경제의 하나의 돌파구임에 틀림이 없으나,이를 이용한 정관경(政官經)간의 유착과 비리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벤처산업마저도 신뢰기반을 잃고 있다. 노사간의 불신도 불필요한 대립과 소요,그리고 진압의 악순환을 거듭하게 하고 있다. 이는 기업 내에서 충실한 정보공개와 이해를 통한 노사간의 신뢰가 없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운영과 관련해 인사행정의 난맥상도 불신의 원인이 되고 있다. 능력과 적재적소주의가 아니라,지연 학연 정파주의가 지배하기 때문에 사회질서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범람하게 된 것이다. 이같이 우리사회의 신뢰기반이 붕괴되기 시작하면,국민의 총체적 에너지가 분산돼 발전이 저지되거나 후퇴하게 된다. 경제적으로는 경제변수들이 경제원리에 따라 작동하지 않게 된다. 신뢰가 없는 사회에서 금리를 아무리 인하해 보았자 투자촉진 등의 효과가 없다. 신뢰가 붕괴되는 사회에서는 소비와 투자가 위축돼 장기불황의 늪에 빠질 수 있다. 나라 빚과 같이 부정적인 면이 과도하게 부각되고,경기에 대한 비관론이 증폭돼 성장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추진하는 옳은 정책이나 일도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는 바로 이러한 불신풍조를 제거하고 신뢰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것이 금리인하보다 훨씬 중요하고 경기부양보다 훨씬 중요하다. 신뢰기반을 구축하는 것은 사회의 책임있고 영향력있는 사람과 집단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첫째,상황이 좋든 나쁘든 정직해야 한다. 정치 경제 등 각 분야 지도자들의 언행이 정직해야 한다. 둘째,원칙을 지켜야 한다. 조령모개로 수시로 말을 바꾸고 정책의 일관성이 없으며,무슨 원칙이 지켜지고 있는지 국민이 모른다면 결과는 신뢰기반의 상실로 이어진다. 셋째,공정성을 지켜야 한다. 인사 재정 금융 모든 면에서 공정한 게임규칙에 따라 공정한 경쟁이 터를 잡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게임규칙 대신 정부의 재량권을 남용하면 그것은 신뢰기반을 상실하는 길이다. 넷째,인치(人治)보다 시스템에 의존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특히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 정부의 3권분립 외에 시민과 언론의 견제와 균형 역할이 중요하다. 기업에서도 내외 견제와 균형시스템이 확립돼야 한다.은행이 기업의 신용을 평가하고,그러기 위해선 은행의 자율성이 확보돼야 하며,기업내부에선 주주와 이해관계자들이 상호 견제와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배구조의 선진화가 필요하다.이러한 신뢰기반이 구축될 때 비로소 그 위에 모든 사회구성원이 공유할 수 있는 가치가 자리잡고 성장기반이 구축될 수 있는 것이다. ckkang@uo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