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업에 있어 최고경영자(CEO)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공기업도 마찬가지여서 민영화나 경영혁신 과정에서 공기업 사장의 역할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이유로 정부는 공기업 개혁을 추진하면서 공기업과 정부산하기관장들의 경영 책임을 묻는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공기업에는 정치권 입김이 작용돼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인사가 사장으로 임명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 공기업 개혁에 비판적 평가가 내려지는 이유도 이런 까닭에서서다. 정부는 지난 6월말 정부투자기관운영위원회를 열고 박문수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의 해임을 임명권자인 대통령에 건의했다. 지난 83년말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이 제정된 후 시행된 18차례의 공기업 경영평가에서 공기업 사장에 대한 해임이 건의된 적은 처음이어서 그만큼 큰 의미를 지닌다. 공기업 사장에 대한 경영책임을 묻는 해임건의 규정은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에 있다. 그러나 과거 정권이 네 차례나 바뀌는 동안 이 조항이 실행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경영실패, 책임 묻는다 =박 사장의 해임 건의는 처음있는 일이어서 정부투자기관운영위원회에서 적지 않은 논란이 일었다. 일부 위원들은 광산업이 사양산업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박 사장이 노사화합을 이뤄내고 해외 자원개발과 고객서비스 개선 등에 공로가 있다는 점을 들어 해임 건의는 지나치다고 반대했다. 그러나 경영 책임을 묻겠다는 정부의 입장은 확고했다. 박 사장이 정치인 출신이란 점은 경영책임을 묻는데 큰 요인으로 작용되지 않았다. 당시 13개 정부투자기관중 유인학 조폐공사 사장, 유승규 대한석탄공사 사장, 정숭렬 도로공사 사장, 권해옥 대한주택공사 사장, 김용채 토지공사 사장, 조홍규 관광공사 사장 등 7명의 공기업 임원들은 정치권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출신들이었지만 경영실적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사장들도 다수 있었다. 광진공은 이번 경영 평가에서 12위를 차지했으며 나머지 11위와 13위 기관장들은 임명된지 얼마되지 않아 박 사장만이 경영 실패에 대한 문책 차원에서 해임 건의된 것. 이같은 해임 건의는 공공개혁 차원에서 공기업 경영평가를 엄정히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것이란게 정부의 설명이었다. 전윤철 기획예산처 장관은 지난해 8월 취임 이후 줄곧 실적이 좋지 않은 공기업 사장에 대해서는 해임을 건의하겠다고 밝혀 왔다. 지난 3월 최중근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이병길 당시 대한석탄공사 사장, 오시덕 대한주택공사 사장 등 공기업 임원 7명에 대한 해임이 이뤄진 뒤에도 전 장관은 경영평가 후 또 한차례의 해임 건의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 왔다. 광진공측은 박 사장에 대한 해임 건의에 대해 반발했다. 직원들이 중심이 돼 경영평가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일간지 등에 호소문을 내는 등 명예 회복을 도모하기도 했다. 객관적 평가기준 마련 시급 =공기업 사장에 대한 해임 건의가 처음으로 이뤄졌다는 점은 공기업 책임경영에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경영평가에 따른 책임을 분명히 묻게 된다면 낙하산 인사 시비도 줄일 수 있다는게 정부의 생각이다. 지난 3월 사장 이사장 등 공기업 임원급 7명에 대한 해임을 청와대 감사원 등이 주도하면서 정치적 색채를 띠었다면 이번 해임 건의는 객관적 경영 실적을 근거로 했기 때문에 앞으로 공기업 개혁의 중요한 도구로 정착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는 경영평가에서 평가대상 기관이 납득할 수 있는 보다 객관적인 평가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누구나 수용할 수 있는 평가기준을 세우는 일이야 말로 공기업 경영평가가 제자리를 찾는데 시급한 과제라는 이야기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