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살리기 위해 기업 규제를 획기적으로 완화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공허한 약속의 되풀이 속에서 '빈 껍데기'로 전락하고 있다. 그 와중에서 수출 및 기업 설비투자 등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이 갈수록 약화되는 등 '속병'이 깊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 공허한 말만 무성한 규제완화 정책 =집권 민주당은 4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심각한 경제난 해소를 위해 재정 확대와 획기적인 기업규제 완화를 추진키로 했다. 강현욱 정책위의장은 "법개정 등을 통해 투자를 제한하는 규제를 모두 없애 기업들이 마음놓고 투자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달 하순으로 예정된 재?보선과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떠나는 민심을 붙잡기 위해선 경제 회생을 최우선적으로 추진하는 수밖에 없다는 현실인식의 반영이다. 그러나 정책 수행의 손발이 돼야 할 정부 일선 부처는 여전히 뒷짐만 지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 9월말까지 2차 기업규제 완화를 단행, "세계 어느 나라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던 당초의 정부 다짐은 온데 간데 없다.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이날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그동안 논란이 돼온 대규모 기업집단지정제와 출자총액제한제를 사실상 현행대로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한 게 대표적인 예다. 이 위원장이 밝힌 대로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을 자산총액 3조원 이상으로 규정하면 현행 30대 그룹 가운데 26개가 그대로 규제를 받게 된다. 출자총액제한제 역시 순자산의 25%를 넘는 출자분에 대해서 출자는 인정하되 의결권을 주지 않겠다고 밝히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시장경제의 근간인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공식 반발하는 등 즉각 논란이 제기됐다. 결국 공정위의 출자총액 개선책은 30대 그룹이 9조4천억원 규모의 출자 한도 초과 주식을 내년 3월말까지 팔아야 하는 부담만 덜어줬을 뿐 '투자 촉진'이라는 규제완화의 본래 취지는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다. ◇ 높아지는 '정책 실기(失機)' 우려 =정부는 당초 미국 테러 참사에 따른 급속한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2차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추경 규모 등을 놓고 아직껏 이렇다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오는 2003년을 목표시한으로 공표한 균형재정 달성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 추가 국채를 발행하지 않는 소극적인 추경 편성을 고려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민간 전문가들은 외부 불확실 요인에 대처하면서 경기 회복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확실하고 분명한 재정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5조원 규모의 1차 추경 집행이 때를 놓쳐 제대로 경기부양 효과를 내지 못한 만큼 이번엔 확실한 처방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김석중 전경련 상무는 "기업 설비투자가 10개월째 뒷걸음질하고 있는 데서 보듯 기업들의 경기체감지수는 최악"이라며 "기업들이 스스로 투자에 나서도록 유도할 수 있는 규제완화 없이는 경기 활성화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언.김인식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