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최고 성직자회의가 20일미 테러참사의 용의자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의 자진 출국을 촉구하기로 결의함에따라 그 배경과 향후 사태 추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빈 라덴의 신병 인도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아프가니스탄의 성직자 회의는 이날 성명을 통해 "울라마(이슬람 율법학자)들은 아프간 이슬람 정부가 빈 라덴에 대해 자신의 자유의지로 아프간을 떠나도록 권할 것을 희망한다"고 전했다. 이슬람성직자들은 또 미국이 아프간을 공격해올 경우 지하드(성전)를 벌일 것을 촉구하는 결의도 채택했다고 아프간의 한 관리가 전했다. 성직자회의의 이같은 결정은 정반대로 해석될 수 있는 모호함을 담고 있다. 성직자회의가 라덴의 자진 출국을 촉구함으로써 미국의 인도 요구를 수용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반대로 라덴에게 무기한 은신을 허용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직자회의의 성명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탈레반은 미국의 라덴 인도 요구를 사실상 거부한 것이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성명은 라덴이 "자유 의지로" 아프간을 떠나도록 권할 것을 희망했다. 여기에는 언제까지 떠나라는 시한도 없고 그가 떠나지 않았을 경우 어떤 조치를 취하겠다는 내용도 없다. 이는 뒤집어보면 탈레반은 라덴의 아프간내 은신을 무기한 허용하겠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성명이 라덴의 인도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음은 만일 미국이 아프간을 공격해올경우 지하드에 나설 것을 촉구한 점에서 보다 분명히 드러난다. 아프간을 자진해서 떠나라는 성직자회의의 권고에도 불구, 라덴이 스스로 아프가니스탄을 떠날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그렇다면 탈레반 정권이 그를 잡아 미국에넘기든지 미국이 아프간 땅에 들어가 그를 체포해야 한다. 탈레반이 라덴 인도의사가 있다면 미군이 라덴을 체포하러 들어가는 것을 묵인하거나 협력해야 한다. 하지만 성명은 미국이 아프간을 공격해올 경우 지하드를 벌일 것을 촉구했다.이는 결국 미국이 빈 라덴 체포작전에 나설 경우 이에 맞서 싸울 것임을 분명히 한것이다. 성직자회의의 성명 내용 중 아프가니스탄내 테러훈련 캠프들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도 미국측의 요구에 못미치는 부분이다. 미국은 빈 라덴의 인도 이외에 최소 200개에 달하는 아프간내 테러훈련 캠프를제거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탈레반 성직자회의는 그러나 이같은 미국의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이 캠프들의 철거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날 성직자회의의 성명 내용만으로 탈레반이 미국의군사적 공격을 모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날 성직자회의의 성명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없지않다. 이는 탈레반측이 미국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빈 라덴에게 자진 출국을 촉구하기로 했으며 그 대가로 ▲제3의 중립적 국가에서 라덴을 재판할 것 ▲탈레반에 대한제재를 해제할 것 ▲북부연맹에 대한 지원을 중단할 것 ▲경제지원을 제공할 것 등을 요구했다는 분석이다. 이 분석이 맞아떨어지려면 탈레반 정권은 미국의 라덴 체포작전에 협력하거나이를 묵인해야 한다. 또 아프가니스탄내 테러훈련 캠프를 없애겠다는 미국의 요구에도 협력해야 한다. 앞으로 탈레반이 이런 문제에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이번성명의 진의가 드러나겠지만 탈레반이 미국이 이런 요구들을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슬라마바드=연합뉴스) 이기창특파원 lk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