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응징'을 외치고 나선 미국 군사 정책 관계자들이 커다란 도전과 한계에 직면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부시 행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체를 규명하기 힘든 테러리즘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구체적인 정책 목표를 수립하는데 적잖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16일 전망했다. 이 신문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우리는 전쟁중'이라고 선언하기는 했지만 정작 '적'의 정체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미국이 타깃으로 삼은 적은 특정한 국가도 정권도 군대도 아닌 '테러리즘'이기 때문이라는 것. 군사 전문가들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목표 설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누구나 동의하는 이번 테러 응징의 궁극적인 목적은 테러 주범을 색출하고 국제 테러망을 붕괴해 향후 유사 테러 사태를 방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를 수행하기 위한 방법론이다. 국무부는 군사력을 동원하기는 하되 그 대상을 테러의 주모 세력에만 제한하기를 원하는 반면 국방부는 훨썬 더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전략을 추구하려는 입장이어서 부시 행정부내에서 이미 의견 충돌의 소지가 다분하다고 상당수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미국의 국방 전문가인 로버트 헌터는 "행정부 내에서 큰 의견 대립이 있다고 해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은 테러 주범을 비호하는 "다수의 국가들"에 대한 공격 의사가 있음을 거듭 밝히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렇듯 군사적인 공격 타깃을 광범위하게 잡는 것이 상당히 위험한 결정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또 미국이 이번 테러 참사의 제1 용의자인 오사마 빈 라덴이 은거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미사일 공격을 퍼붓는 시나리오도 가능하지만 정확한 소재조차 파악이 안되는 라덴을 잡는 작업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프가니스탄에 지상군을 파견하는 것도 하나의 가능성으로 꼽힐 수 있다. 하지만 과거 막강 구소련군을 축출하는데 성공한 아프가니스탄 군에 맞서 보병 작전을 펼치는 것은 미국으로서 별로 내키지 않는 방법일 것이다. 따라서 자존심에 흠집이 난 미국인들의 정서상 군사작전이 불가피하다고 치더라도 부시 행정부의 테러 응징은 효율성 측면에서 최선의 선택으로 비춰지기 힘들 것 같다. 한편 이번 대(對) 테러 작전과 관련, 미 정부는 테러분자들의 연계망을 꿰뚫기 위해 미 중앙정보국(CIA) 내부 규정을 대폭 완화할 공산이 큰 것으로 보인다. 지난 95년이후 CIA 내에서는 테러리스트나 범죄자들을 '정보통'으로 두는 것이 금지돼 왔다. 하지만 딕 체니 미 부통령은 최근 "눈에 띄지 않는 어둠의 세계에 치중하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라며 정보 수집에 따르는 제약을 가능한 한 없애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고성연 기자 amaz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