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2월과 9월이면 패션인들의 눈과 귀는 뉴욕 맨해튼 중심에 있는 브라이언트공원에 몰린다. 미국의 유명한 시인이자 언론가였던 윌리엄 쿨렌 브라이언트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이 공원에서 파리 밀라노 런던패션쇼와 함께 세계 4대 패션행사로 꼽히는 뉴욕컬렉션이 열리기 때문이다. 지난 93년 '패션의 팍스 아메리카나'를 노리며 시작된 행사는 10년도 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세계적인 패션축제로 자리잡았다. 파리나 밀라노의 디자이너들이 '보여주기 위한 쇼'에 치중했다면 뉴욕은 '실제 입을 수 있는 옷'을 내세웠다. 상업적인 컬렉션이라는 이 전략은 대성공을 거뒀으며 뉴욕은 실용패션의 발원지로 추앙받게 됐다. 특히 다른 3개 도시보다 행사일정을 앞당기기 시작한 98년 이후 뉴욕컬렉션의 힘은 파리와 밀라노를 위협할 정도로 커졌다는 게 패션계의 견해다. 캘빈 클라인,도나 카렌 등 미국 출신의 디자이너들은 홈그라운드에서의 활약을 기반으로 베르사체나 아르마니와 같은 거성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마이클 코어스,마크 제이콥스 등의 신진 디자이너들은 뉴욕컬렉션에서 화려하게 데뷔한 후 세린느,루이뷔통 등 유럽 패션하우스의 안방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뉴욕컬렉션은 지난 2월 열린 2001 가을·겨울컬렉션에서 급제동이 걸렸다. 너무 상업성을 강조하다보니 패션쇼의 연출방법이 고루하고 구성도 진부해 볼품없는 패션행사라는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현지 언론들은 '뉴욕 패션계의 명예를 추락시킨 행사'라고 혹평했고 헬무트 랭 등 유명 디자이너들이 다시 파리로 돌아갈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그런 점에서 지난 7일 시작된 2002 봄·여름 뉴욕컬렉션은 그 어느때보다 관심을 끌었다. 한차례 위기를 겪은 후 '추락이냐,부활이냐'가 결정되는 중요한 순간이었던 셈이다. 이번에는 특히 자동차회사인 벤츠의 대대적인 후원을 받아 공식 행사명을 '메르세데스 벤츠 패션위크'로 정하는 등 뉴욕컬렉션 주최측은 그 어느때보다 활기차고 의욕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당초 14일까지 예정된 일정은 11일 뉴욕 테러 대참사로 인해 중단돼 나머지 패션쇼는 10월로 연기됐다. 총 1백명의 행사 참가 디자이너 중 일부는 한달 넘게 늦춰진 뉴욕컬렉션을 포기하거나 파리 밀라노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고 한다. 뉴욕패션계가 이 최악의 시련을 어떻게 극복해낼지 궁금해진다. 설현정 기자 sol@hankyung.com